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예술'을 든다. 여기서 예술은 불안을 가중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만화’는 오랜 세월 동안 풍자를 통해 부도덕한 사회 또는 지도자들을 훈계해왔다. 오늘날 신문에 실리는 만평이 이를 보여주는 가장 쉬운 예다. 실제로 만평은 세상의 어두운 모습을 꼬집고, 이를 드러냄으로써 많은 이의 공감을 산다. 그러나 '드러내는 것(reveal)'과 '해결하는 것(resolve)'은 다르다.
사실 드러내기는 비교적 쉽다. 눈앞의 현실에 대해 냉소적 시각을 지닌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엿 같은 세상' 따위의 '생각'을 해봄 직하다. 술 몇 잔을 기울이다 보면, 생각은 "우리나라는 이래서 문제야"라는 '드러냄'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또한, 이렇게 드러낸 한국의 어두운 단면을 두고 남들의 '공감을 얻는 것' 역시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술이 깨고 난 뒤에 맞이하는 아침은 평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현 정부에 대한 심판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던 재보궐 선거는 예상외로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인 견해를 몇 자 쓴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우선 아래의 만평을 보자.
위 만평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문제는 비교적 쉽게 읽힌다.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로 묶이는 보수 집권층이며, 풍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미개하다'고 칭한 국민이다. 작가와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뭔가 불편하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결과는 이미 나왔고, 앞으로 우리는 그 결과를 몸소 체험할 것이다. 만평을 그린 만화가 역시 마찬가지다. 수십 수백 편의 만평을 그린다고 해서 크게 바뀔 것은 없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대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참패한 야당을 보자. 세월호 참사 이후 야당은 끊임없이 책임론, 심판론을 들어 여당을 몰아세웠다. 현 정부의 무능력과 몰상식한 대처를 꼬집어 실제 많은 국민의 동조를 얻어냈다. 드러냄이 공감으로 자연스레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행태와 해결책 없는 비판을 지속하자 국민들은 피로해졌다. 오히려 반감을 사기도 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을 하며 돌아서는 이들도 속출했다.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이번 선거가 아닐까.
단순한 드러냄은 결코 해결로 귀결하지 못한다. 해결이 드러냄보다 어려운 것은 맞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뤄내야 하는 문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드러낼 만한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 역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은 편법을 쓰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며, 어떠한 불순한 의도도 없어야 한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문제다. 현재 많은 이가 무관심, 포기 또는 편승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국가나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안에 속해있는 국민 그리고 구성원이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라는 반문(反問)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자문(自問)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