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무기력함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에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당장 돈을 벌지 않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을 정도의 경제적 여건을 갖춘 집안에서 태어났다. 덕분에 마음의 병이 나서 앓아누운 지난 몇 년간, 혼자 불안하긴 했어도 다른 누군가처럼 필사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부모님에게 매달 약간의 용돈을 받으며, 일할 생각은 접어두고 몸이나 추스르라는 따뜻한 위로 속에 안일함에 젖어 들 정도였다. 실제로 '조증'보다 '울증'이 나를 덮쳤던 몇 개월간은, 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했다.
그럴 때 나를 변화시킨 것은 아주 약간의 '움직임'들이었다. 무리해서 공부를 시작하거나, 무언가를 새롭게 도모하기 위해 거창하게 계획을 짜는 것은 필요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더군다나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럴 땐, 무기력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을 아주 약간씩만 바꾸면 된다. 이를테면 점심을 먹고 난 뒤 잠이 올 때, 가까운 곳으로 산책하러 나갈 수 있다. 짧게는 10분, 바깥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집이나 회사 사무실에서 빈둥대는 것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훨씬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주말을 보내는 편이라면,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방문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꼭 두꺼운 책을 빌려 읽지 않더라도, 새로운 장소에 들렀다는 사실 자체가 무기력함을 덜어준다. 밖으로 나가는 게 싫다면 넷플릭스나 TV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나 드라마를 챙겨보는 것도 괜찮다. 나는 주로 해외 드라마를 보며(영드/미드, 혹은 중드) 외국어 공부를 하는 셈 친다. 물론 <킹덤> 같은 오리지널 한국 시리즈도 챙겨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벗어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기도 한다.
모바일로 무엇이든 찾아볼 수 있게 된 요즘 같은 때엔 유튜브(Youtube)에서 관심 있는 분야의 영상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예를 들어 돈을 좀 모으고 싶다면 경제나 재테크와 관련된 유튜버를, 언어를 배우고 싶다면 해당 언어를 가르쳐주는 유튜버를, 화장법을 배우고 싶다면 뷰티 유튜버를 찾으면 된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내가 원하는 것 그 이상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유튜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어떨 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여러 영상을 연달아 보기도 한다. 멍하니 영상만 보기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운동을 하면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어떤 날은 이 같은 아주 약간의 '노력'조차 하기 싫을 수 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럴 땐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하루 정도 월차를 내고 집에만 박혀 있다고 내일 당장 다니던 회사가 망하거나, 회사에서 잘리는 일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또, 12시간 이상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한다고 세상이 뒤집히거나 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당신은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도 누릴 수 있다. 무기력함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한 스푼만 덜어내고, 오직 나만을 위해 따뜻한 차 한 잔을 달여내는 여유를 누려보자.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그 자체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 아주 작은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생기지 않으면 또 어떤가. 당신은 당신 그 자체로 사랑받아 마땅하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내가 먼저 나를 아껴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라도 따뜻하게 보듬어줘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서서히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