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이렇게 재밌게 읽은 소설은 정말이지,
올해 들어 처음이었다. 어쩌면, 올해가 아니라도.
제목에서 풍기는 산뜻함으로 인해
내심 기대했던 내용과는 사뭇 달랐지만
자꾸만 슬퍼서 눈물이 났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와중에도 쿡쿡 웃음이 났다는 거다.
어디에서 웃었냐는 아름이의 물음처럼.
다른 말은 필요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냥 읽어보길.
그리고 행복해지길, 바란다.
*
"아빠."
"엉?"
"지금 슬퍼요?"
"응."
"나 때문에 그래요?"
"응."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답했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p. 49-50, 1부 2
"그러니까 아빠."
"엉?"
"언젠가 아빠가 너무너무 외로울 때, 이 세상이 무섭고 막막한 태평양처럼 느껴질 때 말이에요,"
"응."
"그때 제가 아빠의 호랑이가 되어드릴게요."
p.55, 1부 2
그때 내가 가까스로 전하려 한 말은 이랬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p.143, 2부 2
"하느님을 원망한 적은 없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그럼."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뭐를?"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그래서 아직 기도를 못했어요.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뒤 나는 겸연쩍은 듯 말을 보탰다.
"하느님은 감기도 안 걸리실 텐데. 그죠?"
p.170-171, 2부 4
"제 눈에 자꾸 걸렸던 건 거기서 떨어진 친구들이었어요.
결과를 알고 시험장 문을 열고 나오는데, 대부분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 품에 안기더라고요.
진짜 어린애들처럼. 세상의 상처를 다 받은 것 같은 얼굴로요.
근데 그 순간 그 애들이 무지무지 부러운 거예요. 그애들의 실패가."
"왜 그런 생각을 했니?"
"그애들, 앞으로도 그러고 살겠죠? 거절당하고, 실망하고, 수치를 느끼고, 그러면서 또 이것저것을 해보고."
"아마 그렇겠지?"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 저는…… 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
"실패해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
p.171-172, 2부 4
"엄마, 이 사람이 그러는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요…… 사라질 것 같은 사람이래요."
어머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곤 한없이 슬픈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름아."
"네?"
"그 책 읽지 마라."
p.177, 2부 5
아름아,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건강을 절약하고, 건강에 집중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는 대신
건강을 낭비하고, 건강을 하대하며, 방탕하게 살아보고 싶어.
그리고 많은 사람 앞에서 아주 크게 웃으며 나의 행복을 자랑할거야.
p.244, 3부 5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편지를 쓰는 일보단 답장을 기다리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신은 혼자 할 수 있는 거지만, 수신은 그렇지가 못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적어도 그렇게 둘 이상이 있어야 하고,
받는 사람이 최소한 자기가 무엇을 받았는지 알아차려야만 가능한 일이 바로 '소통'이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겼을 것을, 말 그대로 내가 뭔가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도 손이나 발이 아니라 '마음'을 사용해서 한 일……
그게 또 '마음'이라 처방할 약으로는 상대의 '마음'만한 것이 없는……
p.251, 3부 5
예전에는 네가 나를 이용하려 드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었어.
누군가에게는 하느님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진통제가 필요하듯
네겐 너보다 더 아픈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
네 인사에 대꾸조차 안하려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만일 네게 그게 필요하다면
나는 그걸 주고 싶다고.
왜냐하면 나는 네가 좋고, 가진 것이 별로 없으니까.
p.267, 3부 7
서하야
치료받는 거 많이 힘들지?
그동안 얼마나 아팠니.
그게 내가 아는 고통들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넌 여자애라 나보다 힘든 부분이 많을 거야.
나는 내 얼굴을 하도 빨리 잃어, 그걸 가진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지만
너는 아프기 전 네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가져본 걸 그리워하는 사람과
갖지 못한 걸 상상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불행한지 모르겠어.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전자일 거라고 생각해.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 떠오르는 문장은 있어.
서하야,
나는 네가 있어 기뻐.
p.269, 3부 7
"그럼 현미경으로 찍은 눈 결정 모양도 봤어요?"
"그럼."
"나는 그게 참 이상했는데."
"뭐가?"
"뭐하러 그렇게 아름답나."
"………"
"어차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땅에 닿자마자 금방 사라질 텐데."
p.287, 4부 2
"평생 아픈 대신 장수하는 자식과 건강한데 요절하는 자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할아버지는 무얼 고르시겠어요?"
…
"아름아."
"네?"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부모는 없어."
"………"
"넌 입버릇처럼 항상 네가 늙었다고 말하지.
그렇지만 그걸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거, 그게 바로 네 나이야. 질문 자체를 잘못하는 나이.
나는 아무것도 안 고를 거야.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부모는 없어……"
p.296-297, 4부 3
아주 오래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난 그런 박자를,
누군가와 온전하게 합쳐지는 느낌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비로소 알아낸 기분이었다.
그건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p.320, 4부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