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위로의/독서

두근두근 내 인생

느린위로 2014. 3. 2. 21:34



두근 두근 내 인생

저자
김애란 지음
출판사
창비 | 2011-06-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차세대 한국문단의 희망, 김애란 첫 장편2002년, 약관의 나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이렇게 재밌게 읽은 소설은 정말이지,

올해 들어 처음이었다. 어쩌면, 올해가 아니라도.


제목에서 풍기는 산뜻함으로 인해

내심 기대했던 내용과는 사뭇 달랐지만

자꾸만 슬퍼서 눈물이 났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와중에도 쿡쿡 웃음이 났다는 거다.

어디에서 웃었냐는 아름이의 물음처럼.


다른 말은 필요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냥 읽어보길.

그리고 행복해지길, 바란다.











*  


"아빠."

"엉?"

"지금 슬퍼요?"

"응."

"나 때문에 그래요?"

"응."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답했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p. 49-50, 1부 2


"그러니까 아빠."

"엉?"

"언젠가 아빠가 너무너무 외로울 때, 이 세상이 무섭고 막막한 태평양처럼 느껴질 때 말이에요,"

"응."

"그때 제가 아빠의 호랑이가 되어드릴게요."

p.55, 1부 2


그때 내가 가까스로 전하려 한 말은 이랬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p.143, 2부 2


"하느님을 원망한 적은 없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그럼."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뭐를?"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그래서 아직 기도를 못했어요.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뒤 나는 겸연쩍은 듯 말을 보탰다.

 

"하느님은 감기도 안 걸리실 텐데. 그죠?"

p.170-171, 2부 4

 

"제 눈에 자꾸 걸렸던 건 거기서 떨어진 친구들이었어요.

결과를 알고 시험장 문을 열고 나오는데, 대부분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 품에 안기더라고요.

진짜 어린애들처럼. 세상의 상처를 다 받은 것 같은 얼굴로요.

근데 그 순간 그 애들이 무지무지 부러운 거예요. 그애들의 실패가."

"왜 그런 생각을 했니?"

"그애들, 앞으로도 그러고 살겠죠? 거절당하고, 실망하고, 수치를 느끼고, 그러면서 또 이것저것을 해보고."

"아마 그렇겠지?"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 저는…… 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

"실패해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

p.171-172, 2부 4


"엄마, 이 사람이 그러는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요…… 사라질 것 같은 사람이래요."

 

어머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곤 한없이 슬픈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름아."

"네?"

"그 책 읽지 마라."

p.177, 2부 5


아름아,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건강을 절약하고, 건강에 집중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는 대신

건강을 낭비하고, 건강을 하대하며, 방탕하게 살아보고 싶어.

그리고 많은 사람 앞에서 아주 크게 웃으며 나의 행복을 자랑할거야.

p.244, 3부 5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편지를 쓰는 일보단 답장을 기다리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신은 혼자 할 수 있는 거지만, 수신은 그렇지가 못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적어도 그렇게 둘 이상이 있어야 하고,

받는 사람이 최소한 자기가 무엇을 받았는지 알아차려야만 가능한 일이 바로 '소통'이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겼을 것을, 말 그대로 내가 뭔가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도 손이나 발이 아니라 '마음'을 사용해서 한 일……

그게 또 '마음'이라 처방할 약으로는 상대의 '마음'만한 것이 없는……

p.251, 3부 5


예전에는 네가 나를 이용하려 드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었어.

 

누군가에게는 하느님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진통제가 필요하듯

 

네겐 너보다 더 아픈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

네 인사에 대꾸조차 안하려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만일 네게 그게 필요하다면

나는 그걸 주고 싶다고.

 

왜냐하면 나는 네가 좋고, 가진 것이 별로 없으니까.

p.267, 3부 7


서하야

치료받는 거 많이 힘들지?

그동안 얼마나 아팠니.

그게 내가 아는 고통들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넌 여자애라 나보다 힘든 부분이 많을 거야.

 

나는 내 얼굴을 하도 빨리 잃어, 그걸 가진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지만

너는 아프기 전 네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가져본 걸 그리워하는 사람과

갖지 못한 걸 상상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불행한지 모르겠어.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전자일 거라고 생각해.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 떠오르는 문장은 있어.

 

서하야,

나는 네가 있어 기뻐.

p.269, 3부 7


"그럼 현미경으로 찍은 눈 결정 모양도 봤어요?"

"그럼."

"나는 그게 참 이상했는데."

"뭐가?"

"뭐하러 그렇게 아름답나."

"………"

"어차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땅에 닿자마자 금방 사라질 텐데."

p.287, 4부 2 


"평생 아픈 대신 장수하는 자식과 건강한데 요절하는 자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할아버지는 무얼 고르시겠어요?" 

"아름아."

"네?"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부모는 없어."

"………"

"넌 입버릇처럼 항상 네가 늙었다고 말하지.

그렇지만 그걸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거, 그게 바로 네 나이야. 질문 자체를 잘못하는 나이.

나는 아무것도 안 고를 거야.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부모는 없어……"

p.296-297, 4부 3


아주 오래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난 그런 박자를,

누군가와 온전하게 합쳐지는 느낌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비로소 알아낸 기분이었다.

 

그건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p.320, 4부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