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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태치먼트',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포옹일지도 모른다

느린위로 2014. 5. 11. 13:33

'디태치먼트', 우리는 모두 외롭고 혼란스럽다

'디태치먼트',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포옹일지도 모른다


스포일 주의


'디태치먼트 Detachment'는 한글로 풀면 '거리 두기, 무관심' 정도가 된다. 문제아들이 수두룩한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발령을 받은 헨리(애드리언 브로디 역)의 태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다. 그렇다고 그가 학생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다른 보통의 교사들보다 능숙하게 문제아들을 대한다. 수업 시작부터 시비를 거는 학생에게는 '수업을 듣기 싫으면 나가도 좋'며 교실 밖으로 내보내고, 특정한 이유 없이 그에게 화를 내며 욕을 퍼붓는 학생에게는 '나는 단지 너에게 기회를 주려는 것뿐'이라며 진정시킨다. (여담이지만, 애드리언 브로디만큼 이 영화에 부합하는 완벽한 얼굴을 가진 배우가 있을까? 그는 1시간 30분 남짓의 영화 동안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로서가 아니라 '교사' 헨리 바스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헨리는 학생 개개인을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교육 철학에 따라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로 아이들을 지도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학생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결여되어 있거나 혹은 부족한데, 이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것에도 모자라, 알코올 중독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린 어머니를 마주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는 타인에게 지나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자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슬픔과 아픔만으로도 충분히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학교를 벗어나 혼자 남겨졌을 때 찾아오는 슬픔과 분노에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리고 유일한 가족인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있는 요양 병원의 간호사에게 애꿎게 화를 퍼붓는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그는 눈물을 흘린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고 있지만 사실 그 자신도 치유가 필요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버스 안에서 매춘하다 폭행을 당하는 10대 소녀 에리카(사미 게일 역)를 마주치게 되지만 자신의 슬픔에 매몰되어 그녀를 지나친다. 그리고 그런 그를 따라 버스에서 내린 그녀에게 잔인한 말을 퍼붓는다. 철저한 'Detachment 거리 두기'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길에서 재회하게 된다. 에리카와 몇 마디를 주고받던 헨리는 그녀를 집으로 초대해 먹을 것을 주고, 강간을 당해 상한 그녀의 몸을 치료해주는 등의 호의를 베푼다. 그의 호의를 처음에는 자신의 몸을 탐하는 것으로 오해했던 에리카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의 도움에 차차 마음을 열게 되고, 정상적인 10대 소녀의 삶을 되찾는다. 헨리를 위해 아침과 저녁을 준비하고, 함께 쇼핑하며 그에 대한 애정도 키워간다. 물론 헨리는 그런 에리카에게 '나를 위해 변할 필요 없다. 우리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고 못을 박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한 기존의 영화들이 문제가 있는 학생들과 이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영웅적인 교사를 다루었다면, 영화 '디태치먼트'는 학생이건 교사건 모두 하나의 '외롭고 혼란스러운' 인간으로 묘사한다. 여기에 더하여 이들은 자신의 아픔에만 침잠되어 타인에게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훨씬 현실적인 접근인 셈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 들어 팽배해진 '쿨Cool한 것'에 대한 신봉이나 '내 인생이니 너는 상관하지 말라'는 배타적인 태도는 우리를 더욱 외롭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외로움과 혼란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 걸까, 아니 해결될 수 있기는 한 걸까?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 감독은 우리에게 두 가지 케이스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신의 가치에 대해 부정을 당하는 왕따 소녀 메레디스(베티 케이 역)의 경우다.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헨리에게 사랑을 느끼고 마지막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가지만, 헨리는 메레디스에게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다. 절망한 메레디스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는 길을 택하고, 헨리는 이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과거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된다. 그 어떤 문제도 만들지 않고 한 달이라는 기간만을 채우려 했던 그의 안일한 마음가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메레디스의 죽음은 그를 혼란으로 밀어 넣는다.


 





그럼에도 영화가 절망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두 번째 경우로 제시된 에리카와 헨리의 관계는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제와 상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보듬으며 살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헨리는 자신의 아픔을 에리카에게 이야기하면서, 에리카는 헨리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서로를 치유해 간다. 헨리는 지금까지 그가 고수해왔던 삶의 방식대로 "I am not good for you(난 네게 좋지 않아)"라며 에리카를 밀어내지만, 영화 마지막 즈음에 다시 그녀를 찾으며 관계의 희망적인 회복을 예고한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포옹일지도 모른다.


'디태치먼트 Detachment'는 디태치먼트, 즉 거리 두기만으로 치유할 수 없는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때로는 학생, 때로는 교사의 입장에서, 그리하여 결국 인간의 본연적인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끝내 사랑스러운 것은 주인공 헨리가 에리카를 다시 찾음으로써 타인에 대한 '구역질 나는 냉정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애정과 관심으로 치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처럼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었으면 한다.




영화 중간에 삽입된 OST로 평소에도 아주 좋아하던 Ray LaMontagne의 Empty가 나와서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