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느린위로의/일기

무너져도 괜찮아

by 느린위로 2025. 4. 13.

 

처음으로 병이 발병한 것은 2017년 6월, 무려 2년하고도 9개월 전이다.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을 자그마치 한 달이나 넘게 먹었고, 맞아서는 안 되는 주사를 여러 차례 맞았다. 그 즈음해서 술도 꽤 달고 살았다. 결정적으로 외할머니의 치매 판정이 내 정신세계를 무너뜨렸다. 그 결과, 조울증 - 더 나아가서는 조현병까지 - 진단을 받았다. 당시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멈추고 입원해야 한다는 전문의의 진단이 내려졌다. 나는 부정하고 싶었고, 조금만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서울에서 병원에 다니기에는 혼자서는 제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부모님이 나를 돌봐줄 수 있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나는 조금 울었고, 많이 아쉬웠다. 놓아두고 와야만 하는 것들에 미련이 남았고, 그 미련을 떨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고, 부모님은 결국 나를 입원시켜야 했다.

처음 입원한 병원에선 새벽 여섯 시가 넘어야만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다섯 시가 조금 넘으면 이내 잠을 깨곤 했다. 그곳엔 아침부터 담배를 달고 사는 할머니가 계셨다. 나는 할머니가 남기고 간 담배 연기를 맡으며 샤워를 했다. 또래의 여자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와 금세 친해졌다. 얼마 가지 않아 그 아이는 우리가 마법사라고 주장했다. 만약 우리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다 이뤄진다는 거다. 내 정신세계가 조금만 더 이상했다면, 나는 어쩌면 그 말을 믿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


아침-점심-저녁으로 약을 달고 살았다. 이상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얼마만큼 정상이었을까. 모르겠다. 얼마 뒤에는 퇴원했지만 병은 재발했고, 나는 아버지에게 업힌 채 병원으로 향해야만 했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에선 약이나 주사를 거부하며 심하게 발악했고, 결국 억지로 안정제를 맞은 뒤 독방으로 감금되었다. 이제 나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병이 차도를 보이지 않자, 부모님은 조금 더 큰 병원을 알아보셨다. 집에서 차로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곳이었지만, 시설과 의료진이 더 나은 곳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옮겨졌고, 처음 몇 주간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주 감금을 당했고, 침대에 묶였으며, 화장실도 제때 가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이상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몰랐다.

날마다 부모님께 연락해달라며 울었다. 살려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병원을 나가려고 끊임없이 몸부림쳤다. 어떤 밤은 잠이 드는 게 무서웠다. 다음 날이면 내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누가 보더라도 나는 제대로 미쳐있었다. 나만 그 사실을 부정했을 뿐. 나중에 부모님과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 전해 듣기론, 내가 해당 병원에서 제일 심각한 환자였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차츰 적응했고, 병원을 탈출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림 그리기나 종이접기 따위의 인지 재활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참여하고자 노력했고, 가끔은 탁구를 치거나 걷기 운동을 하며 무료한 시간들을 지새웠다. 완전히 무너져버린 나는 아주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약은 점차 줄었고, 병원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싶을 때쯤 퇴원 가능 통보를 받았다.


지금은 하루에 한 번만 약을 먹는다. 꾸준히 운동도 하고 있다. 약의 부작용으로 체중이 15kg가량 불어났기 때문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면 아직은 한참 모자라지만 말이다. 아프고 난 이후,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를테면 핸드폰 사용이 불가능했고, 경제적인 의사 결정도 할 수 없었다. 충동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우려에서였다. 

올 3월에 들어서고야 정지된 핸드폰을 풀고, 지갑도 돌려받았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완전히 무너졌던 나는,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고. 그간 안부를 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이 글로 인사를 대신한다. 아픈 동안 적고 싶었던 글들이 있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기록할 것이다.

그 전에, 여기까지 읽어준 당신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혹시 지금 몸이나 마음이 아픈 이가 있다면 나를 보며 희망을 얻기를 바란다. 무너져도 괜찮다. 다시 일어설 용기만 있다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웃으며 인사를 하기로 하자. 여기저기 부딪히며 살아왔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모두 수고했다고 말이다.

'느린위로의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0) 2025.04.13
우울의 정체 2  (0) 2020.02.27
사랑이 한 권의 책이라면  (0) 2020.02.27
사랑과 우정 사이  (0) 2020.02.27
그와 함께면 더는 외롭지 않았다  (0)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