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위로의/일기35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무기력함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에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당장 돈을 벌지 않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을 정도의 경제적 여건을 갖춘 집안에서 태어났다. 덕분에 마음의 병이 나서 앓아누운 지난 몇 년간, 혼자 불안하긴 했어도 다른 누군가처럼 필사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부모님에게 매달 약간의 용돈을 받으며, 일할 생각은 접어두고 몸이나 추스르라는 따뜻한 위로 속에 안일함에 젖어 들 정도였다. 실제로 '조증'보다 '울증'이 나를 덮쳤던 몇 개월간은, 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했다.그럴 때 나를 변화시킨 것은 아주 약간의 '움직임'들이었다. 무리해서 공부를 시작하거나, 무언가를 새롭게 도.. 2025. 4. 13. 무너져도 괜찮아 처음으로 병이 발병한 것은 2017년 6월, 무려 2년하고도 9개월 전이다.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을 자그마치 한 달이나 넘게 먹었고, 맞아서는 안 되는 주사를 여러 차례 맞았다. 그 즈음해서 술도 꽤 달고 살았다. 결정적으로 외할머니의 치매 판정이 내 정신세계를 무너뜨렸다. 그 결과, 조울증 - 더 나아가서는 조현병까지 - 진단을 받았다. 당시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멈추고 입원해야 한다는 전문의의 진단이 내려졌다. 나는 부정하고 싶었고, 조금만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서울에서 병원에 다니기에는 혼자서는 제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부모님이 나를 돌봐줄 수 있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나는 조금 울었고, 많이 아쉬웠다. 놓아두고 와야만 하는 것들에 미련이 남았고, 그 미련을 떨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 2025. 4. 13. 우울의 정체 2 불쑥 찾아온 우울을 견딜 수 없어 그저 울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우울감은 나를 처절하게 무너뜨렸다. 자존감이나 자긍심 같은 말은 당시의 내겐 사어(死語)에 불과했다. 나는 그때 오로지 '시간'만을 내 편으로 둔 채 외로이 겨울을 났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상처는 아물었다. 상처가 아문 자리 뒤편에는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우울감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 우울은 내게 안 좋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쓰나미처럼 몰아쳐 나를 덮치곤 했다. 할머니의 알츠하이머 진단 소식을 접한 뒤 나는 한참을 울었다.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완전히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슬펐다. 나는 몇 날 며칠을 술로 지새웠고, 결국 몸이 견디질 못해 병이 났다. .. 2020. 2. 27. 사랑이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사랑에 있어 그렇게 착한 편이 아니었다. 조금만 수가 틀리면 헤어지자는 말을 불쑥 꺼내 들었고, 그러다 기분이 좋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먼저 사과를 건네기도 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사랑할 때 가장 마지막에 꺼내야 하는 카드가 '이별'이라고. 아무렇게나 그 카드를 남발하면 분명 후회할 때가 올 거라는 경고였다. 나는 그 경고를 무시한 덕분에 호기롭게 먼저 꺼내든 이별 카드에 역으로 카운터 펀치를 맞곤 했다. 상대편이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그래, 헤어지자"라는 수긍을 했던 것이다. 사랑을 쉽게만 여겼기 때문일까. 그것보단 실은 나를 좀 더 봐달라는 투정이었을 것이다. 상대방도 그걸 아예 모르진 않았기에, 왜 그러느냐고 달래기도 하다가 종국에는 지쳐버린 채 그 카드를 받아든 것이리라. 20.. 2020. 2. 27. 사랑과 우정 사이 살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아빠가 좋은지 엄마가 좋은지를 선택하는 가벼운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부터,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할지 꿈을 좇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할지를 묻는 무거운 질문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처럼 운명론적인 질문도 존재한다. 이때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후의 결과는 온전히 내 책임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2012년 여름, 머나먼 타국 땅 네덜란드에서 내가 마주한 선택지는 사랑과 우정, 두 가지였다. 우정은 매우 특별했고, 사랑은 무척 신선했다. 복학한 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나는 교환학생으로 파견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싱글이었고, 그래서 준비 과정에서의 마음고생은 없었다. 토플.. 2020. 2. 27. 그와 함께면 더는 외롭지 않았다 두 번째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연극 연습 이외의 시간에도 만났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와 함께면 더는 외롭지 않았다. '외롭다고 사람을 만나선 안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여태 외로워서 만난 남자들과는 모두 얼마 되지 않아 헤어졌다. 반대로, 그는 내가 커다란 고독 끝에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고 있을 즈음에 나타났다. 즉, 외로워서 만난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내 어딜 가든 꼭 붙어 다니는 연인이 되었다. 나중에는 그가 내가 사는 건물의 다른 호수에 이사를 오기도 했다. 우리는 동거 아닌 동거를 즐겼다. 부모님이 찾아오는 날이면 그는 자기 방에서, 나는 내 방에서 머물며 짜릿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모님의 얼굴을 본 남자친.. 2020. 2. 27.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