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순간이 있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나
공감할 수 없었던 상대방의 감정을
문득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순간.
아, 그게 이런 일이었구나.
아, 그게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나는 예전에 이별을 쉽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조금 힘이 들면 어김없이,
"어쩌면 우린 아닌 것 같아."
"우린 오래 만나진 못할 것 같아."
버릇처럼 쉽게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렇게 막상 이별이 찾아오면
나는 놀랐고 가슴 아파했고 무척이나 후회했다.
갑자기 찾아온 듯한 이별은 그 말을 계기로 걸어오고 있었음을
단숨에 사라진 듯한 감정은 그 말을 계기로 가라앉고 있었음을
그제야 알았다면서 말이다.
다시 그런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당신들의 느낌은 여전히 미지수였다.
늘 헤어지자고 말하는 건 내 쪽이었는데
오히려 왜 당신들이 더 쉽게 체념할 수 있는지
어떻게 당신들이 더 그렇게 차가울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내가 당신들이 되니
비로소 당신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관두자는 그 말은
내뱉는 순간 듣는 이의 가슴에 작은 구멍을 낸다.
구멍은 혼자서 계속해서 커지다가
이내 다시 메울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다.
그러면 적응의 동물인 인간은
그 구멍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힘들어 포기해야 함을 알게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질식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쉽게 이별을 말해서는 안 된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홧김에 내뱉은 그 말이 만든 구멍은
그 어떤 다른 말로도 되돌리기 힘들다.
'느린위로의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겨울을 난다 (0) | 2020.02.27 |
---|---|
괜찮다, 정말 (0) | 2020.02.27 |
증상은 있지만, 이유는 없는 (0) | 2014.09.07 |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0) | 2014.07.31 |
Thanks to You: 지나간 당신들 덕분에 (0) | 2014.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