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의 표지도 그렇고, 카피 문구도 그렇고.
그러나 공학을 전공했다는 작가답게 소설 전체에 과학적 이론이 녹아있다.
그래서 전형적인 문과인 나는 좀 어려웠다.
그렇지만 책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읽힌다.
이론을 이해하기 보다, 문맥을 파악한다면 말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이 뻔하지만 아름다운 결말이었다면,
뻔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름답다고 보기도 어려운 결말이었다.
세계 여러 도시들에서 펼쳐지는 각기 다른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는
결국 하트 브레이크 호텔로 귀결된다.
사랑의 기억과 그 속도를 이용한 시간 여행에서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간다.
사랑의 기억은 어쩌면 그런, 백일몽과도 같다.
당신과 만났던 때가 오래전 일인데,
그것이 오늘의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같기도 하듯.
*
내가 필요했던 것은 아무런 의심 없는 사랑,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상대방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랑. 그런 사랑.
p. 106, 당신을 위한 테러 <도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위로를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야단을 치면서도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걱정을 해줄 사람.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고 거짓말로 위안을 해줄 사람. 나를 구원해 줄 사람.
p. 138, 구원의 날 <마이애미>
돈이 없는 건 둘째치고라도, 열정 없는 삶은 죽어도 싫어.
이룰 수 없다고 꿈도 꾸지 말란 법은 없잖아?
문짝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너는 그런 이유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잖아?
…
바보, 바보야. 하지만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아니 사랑한다고.
네가 떠나버리면 죽을 때까지 쫓아갈 거라고. 꿈 속이든, 지구 반대편이든 따라갈 거라고.
그런데 넌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적이 언제야? 뭐?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냐고?
나는 듣고 싶거든. 확인하고 싶거든. 말로 해야 확신할 수 있거든. 우울할 땐 우울해야 하고, 기쁠 땐 소리쳐야 하거든.
넌 짜증 나. 질색이야. 모든 걸 다 이해하는 척할 뿐 바보같이 멍하게 살고 있잖아.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모든 걸 던지지도 않잖아. 나에게 매달리지도 않잖아. 그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그냥 내가 싫지 않은 것뿐이고, 그냥 편한대로 지내고 있을 뿐이잖아.
…
나한테 자꾸 가질 수 없는 걸 갖고 싶어 한다고, 될 수 없는 걸 되고 싶어 한다고 빈정댈 필요가 없어.
나는 단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넌 뭐니? 그런 거나 있니?
얼굴 구기고 열심히 일하는 게 어른이 되는거니? 그런 인간은 재미없어.
지금 너는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던 얼간이 어른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미쳐 있어도 좋아. 살아 있는 사람하고 살고 싶어. 나는 혼자 있는게 죽어도 싫어.
그래서 룸메이트가 필요하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 사랑할 사람이 필요한 거야.
그냥 함께 지낼 사람이 필요하면 꺼져버려. 헤어져.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너는 제로야!
p. 260-261, 휠 오브 포춘 <라스베가스>
우리는, 이룰 수 없는 꿈만 계속 꾸고 싶었던 것이다.
막상 이루게 될 낌새가 보이면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꿈을 향한 부단한 노력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나 미완성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것,
그런 상태로 도달할 수 없는 꿈을 바라는 것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우리만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운이 좋아 꿈을 이룬 사람들을 비웃어 주는 것이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p. 264, 휠 오브 포춘 <라스베가스>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어쩌면 민정 씨도 속으로 나를 흉보고 있을지도 몰라.
나이가 많든 적든, 그런 게 무슨 소용이겠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따뜻한 관심일 텐데."
p. 294, 내 머릿속의 핸드폰 <뉴욕>
누군가에게 맹목적으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어떤 식이든 그 느낌이 몸에 남아 있어.
그 사랑을 내가 아닌 남에게 주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질투가 났던 거야.
p. 329, 횡령산 드라이브 part 2 <부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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