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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위로의/영화·TV·OTT

'트랜센던스': 그는 윌이었을까?

by 느린위로 2014. 5. 20.

'트랜센던스': 그는 윌이었을까?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굳이 트랜센던스가 어떤 줄거리의 영화인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영화관으로 향했다. '모든 상상을 초월한다'는 꽤 흥미로운 카피의 영화는 정말 모든 관객의 상상을 초월했을까? 답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생각할 거리는 다수 던져준 느낌이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의 엄청난 발전, 그리고 그에 따라 인간의 뇌를 컴퓨터로 이식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설정 아래, 영화는 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스포일 주의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남자 맥스(폴 베타니 역)는 폐허가 되어버린 집을 찾아가는데, 이 집은 인공지능 연구가 윌(조니 뎁 역)과 그의 부인 에블린(레베카 홀 역)이 함께 살던 곳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액정 화면 깨진 채 땅에 널브러져 있는 휴대전화, 고작 문 받침대로 쓰이는 컴퓨터 키보드 등 현재 우리의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장비들이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라고 궁금하게 만드는 아주 쉬운 배경 장치인 셈.


맥스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꽤 오래된 듯한 집의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활짝 피어있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긴다. 그는 윌과 에블린이 신념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는 위대한 과학자였다고 평한다.


5년 전, 윌은 인류가 수억 년에 걸쳐 이룬 지적능력을 초월하는 것은 물론, 지각능력까지 갖춘 슈퍼컴 '트랜센던스'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그런데 이날,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던 곳을 포함하여 인공지능을 다루던 연구소 곳곳을 대상으로 테러가 일어난다. 인공지능 연구의 확산이 인류의 멸망이라 주장하는 반()과학단체 RIFT의 소행으로, 이 때문에 윌은 방사능에 노출되어 죽음의 문턱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테러에 의한 죽음 직전에 한 과학자가 보낸 인공지능 관련 연구 결과로 원숭이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윌과 에블린은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 시켜 그를 살려내고자 한다.


처음에는 실패의 위험성을 우려하여 그녀를 돕기를 꺼리던 맥스 역시 이들을 돕고, 그렇게 윌은 컴퓨터 내에서 '부활'한다. 그러나 깨어난 지 15분 만에 증권 및 금융 관련 정보를 알고자 하고, 온라인에 접속하여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윌 답지 않은' 행동에 맥스는 '이건 윌이 아닐지도 몰라!'라는 강한 의문을 표하며 트랜센던스의 작동을 정지하려 한다. 하지만 윌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에블린은 맥스에게 '나가라'고 외친다.


씁쓸한 마음에 술집을 방황하던 맥스는 RIFT 조직에 의해 납치를 당하고, 그들은 어떻게든 트랜센던스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맥스에게 자신들을 도울 것을 협박한다. 이들은 인공지능은 결코 인간을 대신할 수 없으며, 고도로 발달한 기계는 곧 세상을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 하지만 에블린은 끝내 가상의 윌을 온라인에 접속시키는 것에 성공하고, 그녀는 곧 윌과 그녀 둘만의 안식처를 조성하기 위해 브라이트우드(Brightwood)라는 이름의 교외 지역으로 피신한다.




윌과 에블린은 브라이트우드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연구 시설을 확장해 나가고, 진화를 거듭한 윌은 새롭게 얻게 된 나노 기술의 힘으로 사람들을 치료한다. 늙어서 걷지 못하게 된 사람, 평생 눈이 멀었던 사람, 폭행을 당해 거의 죽을 뻔 한 사람…. 윌에게 구원을 받은 이들은 엄청난 힘을 얻게 되고, 윌은 심지어 이들의 몸을 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본디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기술의 힘으로 탄생한 신()인류에 대한 기존 과학자들과 RIFT의 우려는 한층 커지고, 이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한다. 대부분의 관객은 윌의 새로운 모습에 영화 속 평범한 인간들처럼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랜센던스가 된 그는 정말 윌이었을까? 에블린 역시 처음에는 윌을 믿고 따르지만, 그의 끊임없는 영역 확장에는 거부감을 보인다.




영화는 트랜센던스가 되어버린 윌을 내내 악(惡)로 묘사하는 듯하다가도, 결국 그가 어떤 인간도 희생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끝 부분에 제시한다. 영화를 본 관객 중 일부는 바로 이러한 혼란에 불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감독이 의도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혼란에 있지는 않을까 짐작해본다.


윌이 자신의 영역을 전 세계로 넓히고자 한 것은 결코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오염된 세계를 정화하고자 했던 에블린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윌은 이를 바이러스에 노출된 에블린과 기꺼이 접촉함으로써 증명한다. 그는 자신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인간을 그리고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존재였음을, 파멸을 통해서 밖에 보여줄 수 없었다.

 


이러한 결말은 물론 특정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기술의 발전을 옹호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을 가지고 경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편의 영화가 반드시 어떠한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야 할까? 난 아니라고 본다. 트랜센던스는 우리에게 질문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였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윌을 기계라 치부하고 그를 제거하려 힘썼을까, 아니면 그의 능력을 이용해 세상을 치유하려고 했을까? 답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어쩌면 트랜센던스의 위험성에 두려움을 느끼며 이를 막으려던 사람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 그러한 폭력성과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