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이언트북스 출판사의 책 2권을 읽고 독서모임을 가졌다.

 

〈큔, 아름다운 곡선〉과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라는 소설이었는데,

무엇보다 자이언트북스 출판사가 아니었다면 쉽게 접할 수 없었을 신진 소설가들의 소설이라 좋았다.

 

〈큔, 아름다운 곡선〉과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독서모임

 

사실 〈큔, 아름다운 곡선〉은 이번 자북클럽에 참여하기 전, 독서모임 도서 지원 이벤트에 당첨되어 미리 읽은 적이 있는 책이었다.

 

당시 독서모임 지인들 몇 명과 숙소를 빌려서 하루 종일 책만 보는 '북스테이' 이벤트를 하며 읽었는데, 오늘 모임에서는 그때와 다른 멤버들도 몇 추가되었다. 그리고 북스테이에서는 다 하지 못했던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내가 던진 질문은, 과연 '인공지능 로봇(안드로이드)'과의 교감,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이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한 번쯤 생각해볼 주제였기에 답변들도 금방 나오는 편이었다(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달랐지만). 어떤 이는 가능을, 어떤 이는 불가능을 외쳤다. 나는 회색지대의 답변을 내놓았다. 가능은 하겠지만 '인간 대 인간의 교감이나 사랑'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고. 대부분 내 의견에 동의했지만, 한 회원은 '튜링 테스트'를 언급하며 인간과 로봇의 구분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로봇이 발달한다면 그때는 로봇이 하는 사랑이 인간이 하는 사랑과 구분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영화 〈그녀(Her)〉와 〈바이센테니얼 맨〉도 언급되었다. 

 

다음으로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에서는 해인과 영원의 관계와 유사한 관계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 해인이 한때 미주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처럼 본인도 닮고 싶은 어른이 있었는지, 해인에게 주희나 영원의 존재처럼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었는지 등을 질문했다. 질문에 대해 각자가 가진 에피소드들을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다음에 읽을 소설책 2권도 도착한 상태인데, 얼른 읽고 독서모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오늘이었다.

 

신진 국내 작가의 소설을 읽고 싶다면, 자이언트북스의 소설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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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양

 

죽음 이후에 전해진 편지들

 

영화는 자살한 언니 미사키(히로세 스즈 분)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례식에서 언니의 고등학교 동창회 초대장을 받은 동생 유리(마츠 다카코 분)는 언니의 부고를 전하기 위해 동창회에 참석한다. 하지만 유리를 미사키로 착각한 동창들 때문에 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돌아오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 유리는 어린 시절 짝사랑하던 언니의 동창생 오토사카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를 만나고, 얼떨결에 연락처도 교환한다. 쿄시로는 유리에게 자신의 소설책 이야기를 묻고, 아직까지도 (미사키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문자를 본 유리의 남편(안노 히데야키 분)은 유리의 핸드폰을 망가뜨리고, 연락할 방법이 없어진 유리는 쿄시로의 명함에 적힌 주소로 언니 미사키인 척, 편지를 보낸다.

 

자살한 언니의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한 유리. 자신이 유리라는 것을 밝히지 못한 채 돌아오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언니의 동창생 쿄시로에게 언니 미사키인 척, 편지를 보내는 유리.

 

이때 유리는 쿄시로가 남편이 있는 집으로 편지를 할까 두려워 주소는 밝히지 않는다. 이에 쿄시로는 졸업 앨범 뒤편에 적힌 미사키의 주소로 답장을 보낸다. 그곳은 미사키의 딸 아유미(히로세 스즈 분)와 유리의 딸 소요카(모리 나나 분)가 조부모님과 지내고 있는 시골집이었고, 편지를 받아본 아유미와 소요카는 미사키인 척하며 쿄시로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쿄시로는 고교 시절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유리, 미사키와의 추억을 편지에 적어 전하며 첫사랑의 기억을 되짚는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쿄시로(카미키 류노스케 분)는 전학 후 가입한 생물부 동아리에서 후배 유리를 만나 친해졌고, 유리와 함께 동네 개울가에서 곤충 채집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을 지나던 유리의 언니 미사키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고교 시절의 유리, 미사키, 쿄시로. 쿄시로는 미사키를, 유리는 쿄시로를 짝사랑했다.
미사키인 척 쿄시로에게 편지를 보내는 아유미와 소요카.

 

하지만 유리와 아유미로부터 동시에 편지를 받으며 서로 다른 필체와 상반된 내용에 의심을 품게 된 쿄시로는 직접 유리를 찾아가게 된다. 이때 쿄시로는 유리가 미사키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음을 밝히고, 유리는 쿄시로에게 미사키가 한 달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음을 알려준다. 이에 쿄시로는 고교 시절부터 미사키에게 보냈던 러브레터들과 대학교 시절 잠깐 사귀었던 미사키와의 경험을 토대로 <미사키>라는 소설을 썼음을 전한다. 또, 이 소설로 데뷔를 할 수 있었지만 25년이 흐른 지금도 오로지 미사키에 대한 글밖에 쓸 수 없음을 고백한다.


마지막 편지, 추억을 되짚다

 

미사키의 부고를 전해들은 뒤, 쿄시로는 과거 미사키가 살았던 집과 함께 다니던 고등학교를 찾는다. 그리고 거기서 미사키를 쏙 빼닮은 아유미와 유리를 쏙 빼닮은 소요카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쿄시로를 한눈에 알아본 아유미는 그를 시골집으로 초대하고, 미사키의 영정 사진을 보여준다. 또, 미사키가 간직하고 있던 편지들을 건네주며 그 편지들이 엄마의 보물이었다고 말한다.

 

쿄시로가 미사키와의 추억을 되짚으며 찾은 고등학교에서 우연히 만난 아유미와 소요카.

 

아유미는 쿄시로가 다녀가고 나서야 엄마 미사키가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읽을 용기를 낸다. 그 편지는 미사키가 고등학교 졸업식 축사 때 발표한 연설문이었다. 미사키가 쓰고, 쿄시로가 고치는 것을 도와준 글. 아래 포스터는 그 연설문의 전문이다. 이 글을 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미사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쿄시로가 조금만 더 일찍 미사키를 찾았다면, 미사키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25년간 미사키 한 사람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한 쿄시로와 함께였다면, 미사키는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미사키가 쓰고 쿄시로가 고친 졸업식 축사 연설문.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미사키와 쿄시로가 어떻게 사귀고 또 헤어지게 되었는지, 왜 미사키는 도망치듯 폭력적인 남편 아토(토요카와 에츠시 분)와 결혼했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자살을 택한 전 부인을 별 볼 일 없는 여자였다고 말해 버리는 무지막지한 남자를 남편으로 선택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손편지로 전하는 아날로그 감성

 

<라스트 레터>는 <러브 레터>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이다. "오겡끼데스까(お元気ですか)"라는 대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실제로 <러브 레터>를 보지 않은 나로서는 두 영화를 비교할 수 없다. 다만, 두 영화 모두 '편지'라는 매체가 주는 아련함과 '첫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음은 명백한 듯하다.

<라스트 레터>는 각종 SNS, 이메일, 메신저로 편지가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21세기에 '손편지'가 전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영화다. 언제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었던가, 반추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대학생 시절 1년간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며 참 많은 엽서와 손편지를 한국으로 썼었더랬다. 행여나 촌스럽게 느껴지진 않을까, 벅차오르는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쓴 적도 많았다. 그때 편지를 전하던 사람들 가운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아쉽다. 다시 한번, 사랑하는 사람 혹은 그리운 사람이 생긴다면 그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싶다. <라스트 레터>는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다.

 


[라스트 레터] 메인 예고편

https://youtu.be/1BWo88h4CjM

 

Posted by 호양

 

 

불쑥 찾아온 우울을 견딜 수 없어 그저 울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우울감은 나를 처절하게 무너뜨렸다. 자존감이나 자긍심 같은 말은 당시의 내겐 사어(死語)에 불과했다. 나는 그때 오로지 '시간'만을 내 편으로 둔 채 외로이 겨울을 났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상처는 아물었다. 상처가 아문 자리 뒤편에는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우울감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 우울은 내게 안 좋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쓰나미처럼 몰아쳐 나를 덮치곤 했다.

 

할머니의 알츠하이머 진단 소식을 접한 뒤 나는 한참을 울었다.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완전히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슬펐다. 나는 몇 날 며칠을 술로 지새웠고, 결국 몸이 견디질 못해 병이 났다. 그렇게 비틀대던 무렵, 나는 나와 너무도 닮은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부서질 듯 야윈 몸에서 짙은 우울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여자친구와 이별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되었다고 고백한 그는, 슬픈 눈망울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간 바(Bar)는 웬만해선 쉽게 찾을 수 없는 비밀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그와 나는 한꺼번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었고, 나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하려는 말을 직감했다. 더 없이 말이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어느새 그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이 다소 느렸고, 말투는 상냥했다. 나는 마치 악마에게 홀린 양 그에게 완전히 매혹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토록 강렬한 감정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오래 참았다는 듯 약봉지를 꺼내 들었다. 알고 보니 그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함께 있을 땐 몰랐지만, 나중에 듣고 보니 상당히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빠졌던 적도 있었던 듯했다.

 

그와 하룻밤을 보낸 뒤 나는 할머니를 뵈러 고향으로 내려갔다. 예상치도 못한 전개에 나는 조금 들떴던 것도 같다. 할머니를 뵙고 올라오는 길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나자는 문자였다. 그의 문자 이후, 나는 아직도 그 경위를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KTX에서 내려 집에 오는 길에 수상한 여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고 있음을 인지했다. 택시를 잡기 위해 짐을 들고 서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쟤 엄마 꺼 아냐? 엄마가 골프 치나 보네. 얘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환청을 들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 그녀를 돌아봤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무도 무례하게 구는 그녀가 몹시도 싫었던 나머지, 나는 택시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나는 집으로 곧바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가 택시에서 내리고 난 뒤에도 들렸다. 나는 그녀가 나를 따라오고 있다고 믿었고, 집 앞 현관문에서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나를 따라오다가 "대박, 저 애 문 앞에 있어"라고 말했다. 어쩌면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그녀 때문에 나는 무척 불쾌했고, 집에 들어가서 한참을 씩씩거렸다. 그때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집 앞으로 오겠다는 전화였다. 나는 불쾌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를 만나러 나갔다. 정말 어이가 없는 사건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그는 나를 보면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는 말만 남긴 채, 그 밤을 마지막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내게 조울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내가 걱정된다며, 꼭 병원에 가보라는 말도 함께였다. 또, 자신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못 된다고 했다. 요즘의 인생에 있어 더 이상의 드라마를 원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간단히 말해, 남자친구가 있는 나와 복잡하게 엮이는 게 싫다는 거였다. 어쩌면 그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인데, 내가 눈치를 채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조울증을 갖게 된 계기가 첫 연애의 실패라고 말했다. 나는 첫사랑의 아픔을 똑같이 겪은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그를 꼭 안아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의 갑작스러운 연락 두절에 나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평생의 소울메이트를 잃기라도 한 양,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정말 그가 떠난 것인지, 이미 자취를 감춘 그의 빈 자리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는 내게 어울리는 칵테일을 직접 추천해줄 정도로 친절했다.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도 공유했다. 무엇보다도 섬세하고 부드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 모든 조각이 그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놓쳤기에 그를 잃게 된 걸까. 슬펐다. 그러나 그와 함께 공유한 그 짧은 하룻밤이 이후에 겪게 된 모든 아픔을 상쇄시킬 만큼 아름다운 것이었음은 틀림없다. 나는 당시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에게 바로 다음 날 이별을 고할 정도로 그에게 빠져 있었다. 그러니 그는 죄가 없다. 너무나도 쉽게 사랑에 빠져버린 나를 탓할 수밖에.

 

운명과도 같다고 생각했던 만남이 그저 스치듯 지나 가버린 인연이 되자, 나는 또다시 우울이라는 마음의 병을 앓게 되었다. 감정은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했고, 마음은 갈기갈기 찢긴 채 너덜거렸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이후에는 환청까지 들렸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하나의 스테이지가 되어 나를 공격하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상세히 당시의 상태를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길 위에 떨어져 있는 음료 캔을 보고, 누군가 내게 그 음료를 먹고 싶은지 묻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실제로 웅얼거렸다. 눈에 띄는 모든 간판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나는 결국 "그만!"이라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조울증에다, 조현증 증상까지 덮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결국 회사에서 일찍 조퇴한 나는 집에 가서 쉬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길도 내내 환청이 들려 진땀을 뺐다. 집에 가면 누군가가 - 가능하면 그가 - 와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환청도 환청이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누군가가 나를 미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침대에 누워 끙끙 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른쪽 옆구리까지 찌르듯 아팠다. 옆집에서 들리는 소리부터 밖에서 나는 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잠자리에 들려는 나를 공격했다. 나는 결국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거기에서 극심한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어쩌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게 찾아온 조울증에는 어느 날 문득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진 그의 영향이 컸다는 점이다. 처음에 나는 그를 무척 원망했다. 한편으론 그가 동정심에라도 내게 다시 얼굴을 비춰주길 바랐다. 나는 그를 탓했고, 그는 그런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나를 차단해버렸다. 이제 어떤 방법을 써도 다시 그를 불러낼 방법이 없다. 지금에 와선 구차하게 불러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홀로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이 우울의 시간이 안타까울 뿐이다.

 

조울증은 길게는 1~2년의 투약 기간을 거쳐야 할 정도로 끈질긴 정신적 질병이다. 나는 우울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이 병을 얻게 되었다. 남들보다 민감한 감정의 레이더를 가진 나는 항상 조심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허락하는 문제에 있어선 특히 그렇다. 또, 내 병이 완전히 낫기 위해서는 누구의 탓도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너무도 쉽게 마음을 줘 버린 내가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우울의 정체는 내가 그것을 온전히 마주하고 인지하게 되었을 때 옅어진다. 우울의 정체를 직시하고 나면, 이길 수 없는 우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나는 그렇게도 아팠나 보다.

 

요즘 나의 기도 제목은 "사랑하는 사람이 제 눈앞에 나타나게 해주시고, 제가 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소서"다. 기도처럼, 이제 다시는 사랑에 실패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아니,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그 우울함에 잠식되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괜찮다. 나는 오늘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운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소중한 지혜들이다. 내 눈앞에 진정한 사랑이 나타났을 때, 겁 없이 뛰어들 수 있기를. 혹여 너무 쉽게 마음을 줘서 다치지 않기를. 다치더라도 그것을 발판 삼아 더 강한 내가 될 수 있기를.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위해,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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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양

 

 

나는 사랑에 있어 그렇게 착한 편이 아니었다. 조금만 수가 틀리면 헤어지자는 말을 불쑥 꺼내 들었고, 그러다 기분이 좋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먼저 사과를 건네기도 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사랑할 때 가장 마지막에 꺼내야 하는 카드가 '이별'이라고. 아무렇게나 그 카드를 남발하면 분명 후회할 때가 올 거라는 경고였다. 나는 그 경고를 무시한 덕분에 호기롭게 먼저 꺼내든 이별 카드에 역으로 카운터 펀치를 맞곤 했다. 상대편이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그래, 헤어지자"라는 수긍을 했던 것이다.

 

사랑을 쉽게만 여겼기 때문일까. 그것보단 실은 나를 좀 더 봐달라는 투정이었을 것이다. 상대방도 그걸 아예 모르진 않았기에, 왜 그러느냐고 달래기도 하다가 종국에는 지쳐버린 채 그 카드를 받아든 것이리라. 20대 초반, 그럼에도 나는 두려운 것이 없었고, 버릇처럼 연애의 끝 무렵엔 늘 "헤어져!"를 입버릇 처럼 달고 살았다. 이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또 한 번의 가슴 아픈 이별 덕분이었다. 덧없이 끝나고 마는 사랑의 마지막 장면에 서서 나는 되물었다. 이제 이별 없이 행복한 연애를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도대체 무엇을 바꿔야 할까? 나는 "헤어져"라는 말을 "사랑해"라는 말만큼 쉽게 꺼내는 내 버릇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맞이할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참고, 또 참으리라. 상대방이 분명 잘못한 일이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보듬어 주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여덟 살이나 많은 남자와의 첫 만남은 맥주로 시작되었다. 그는 맥주는 맥주마다 꼭 맞는 잔에 따라서 마셔야 한다며, 홍대 놀이터까지 맥주잔을 들고 오는 특이한 정성을 갖춘 남자였다. 오빠보다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릴 만큼 나이 차이가 났지만, 그의 그런 고집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후에 따로 몇 번 더 만나고 났을 때, 그는 내가 맘에 든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가 싫지 않았던 나는 그와의 연애를 시작했다.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는지는 몰라도, 그와의 연애는 초반부터 내가 참아야 하는 것투성이였다. 그는 나를 어느 날엔가 다른 여자의 이름으로 불렀다. 나는 아주 불쾌했지만, 다음번에는 그러지 말라는 말로 그 일을 덮었다. 핸드폰에 남겨진 옛 여자친구의 흔적들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오히려 그를 더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그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고, 그를 채워줄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생각했다. 이 놀라운 변화 앞에 스스로 대견했던 것도 같다. 나는 나를 버리고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의 희열과 고통을 동시에 맛보았다.

 

수많은 편지를 써서 그에게 보냈고, 많은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힘썼다. 그의 어두움은 깊었지만(그는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었고, 그만큼의 어두움이 그를 늘 따라다녔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아니 뚜렷이 보더라도 그것을 감싸 안아주기 위해 더 없이 노력했다. 그 노력을 그도 알았을까. 잘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 내가 오빠에게 이렇게 많이 줄 수 있는 건 내가 여유가 많아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아주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그에게 얼마나 깊이 다가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었다. 여타의 연애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예전만큼 쉽게 이별 카드를 꺼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나는 고통받았고, 나중에는 그 고통도 사랑의 일부일까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랫말처럼, 나는 점점 지쳐갔다. 나는 그에게 끝내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별 뒤에도 수차례 그를 다시 찾았다. 헤어진 이후 맞이한 그의 생일에 케이크를 들고 그를 찾았고, 술을 잔뜩 취해 그가 보고 싶을 때면 불쑥 그를 찾아가 놀라게 했다. 우리의 사랑은 내가 참은 그만큼 끝맺기 어려워져 있었다. 나는 그의 어두움을 온전히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가 나를 영원히 채워줄 수 없을 거란 것도 알았다. 그런데도 그를 계속 찾았던 것은 몹쓸 습관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와의 몇 번의 재회 끝에 이제는 정말로 끝을 내야 한다는 것을 예감했다. 그에게 '마지막'이라는 말을 뺀 채 만날 것을 제안했고,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절하지 않았다. 마지막 저녁을 먹으며, 그는 마치 예전처럼 자신의 일상을 내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우리의 미지근한 사랑을 끝내야 함을, 사랑이 한 권의 책이라면 이제 책장을 덮어야 할 때가 온 것을 알았다. 그의 말을 끊고, 내가 말을 이었다.

 

"오빠, 내가 오늘 오빠를 만나자고 한 건, 이 이야기를 잘 끝내기 위해서야. 우리의 사랑이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계속해서 그 책을 붙잡고 덮지 못한 채 한참을 있었어. 하지만 이제는 다른 책을 꺼내볼 수 있을 것 같아. 그 다음 장이 백지일지라도, 나는 이번 장을 덮을 자신이 생겼어."

 

그는 묵묵히 내 말을 들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꺼냈던 자신이 민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그렇지 않았기를 바란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준비한 선물을 건네었고, 우리는 가벼운 포옹을 끝으로 '진짜' 헤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멀어지는 그를 보면서, 나는 내 삶의 중요한 챕터 하나가 끝나고 있음을 알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저 잘 견뎌내었다고, 충분히 사랑했고, 많이 자랄 수 있었다고, 스스로 오히려 대견해 했다. 그는 멀어져 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나에 대한 원망이나, 더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보다 되려,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기 위해 드디어 찾아온 공백이나 잘 마무리된 이야기의 끝으로 받아들였기를.

 

나는 그로 인해 사랑이 끝나더라도 상대방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별의 아픔에 취해 나 자신을 내팽개치는 몹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었다. 씁쓸한 사랑의 끝이 아니라, 담백한 이별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그'를 좋은 책으로 추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되고 나서였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쉽게 이별을 내뱉지 않고, 끝까지 상대방을 위하고 아끼는 마음. 그 마음이 나도, 상대방도 자라게 하는 사랑의 방법임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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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양

살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아빠가 좋은지 엄마가 좋은지를 선택하는 가벼운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부터,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할지 꿈을 좇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할지를 묻는 무거운 질문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처럼 운명론적인 질문도 존재한다. 이때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후의 결과는 온전히 내 책임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2012년 여름, 머나먼 타국 땅 네덜란드에서 내가 마주한 선택지는 사랑과 우정, 두 가지였다. 우정은 매우 특별했고, 사랑은 무척 신선했다.

 

 

복학한 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나는 교환학생으로 파견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싱글이었고, 그래서 준비 과정에서의 마음고생은 없었다. 토플 성적과 자기소개서, 간단한 면접의 과정을 거친 뒤 무사히 원하던 나라, 원하던 학교에 배정되었다. 마리화나와 매춘이 합법인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로 1년간에 걸친 여정이었다. 당시 파견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온종일 영어로만 의사소통해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천혜의 조건이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전에 없이 더욱 자유로워졌다.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척이나 행복했다. 내 자유로운 사상과 거침없는 표현에 오히려 그들이 내게 유러피안 소울(European Soul)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학생 전원에게 주어지는 널찍한 기숙사, 학교에서 조금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자리하고 있는 커피숍(네덜란드에서는 마리화나를 취급하는 곳을 이렇게 칭한다), 교회 바로 앞에서 비키니만 걸치고 매춘을 시도 중인 레드라잇디스트릭트까지. 네덜란드가 내게 선사한 자유는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6개월이 정신없이 지나는 동안 제일 가까워진 친구는 스페인에서 온 말타(Marta)였다. 나이가 같고, 관심사도 비슷했던 우리는 온종일 붙어 있어도 계속 깔깔댈 정도로 친해졌다. 나중에는 '같이 산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한국에서도 이처럼 가까웠던 친구는 없었을 정도였다. 말타와 함께 있으면 행복했고, 나는 그 행복이 끝나지 않으리라고 바보처럼 믿었다. 이번에도 관계의 끝은 내 쪽의 실수 때문에 찾아왔다. 그렇다. 사랑이었다. 사랑은 너무나도 간단히 우정을 위협했다.

 

말타에게는 은밀히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네덜란드에 이민을 온 일거(Iigar)라는 아이였다. 우리는 자주 술도 함께 마시고 놀러도 다녔다. 일거는 조금 어둡고 시니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외모는 꽤 준수한 편이었고, 어린 시절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던 덕분에 몸도 다부졌다. 우리와 친해지고 난 다음에는 특정 사안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자주 내비치곤 했는데, 그 견해들이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똑똑한 여자는 남자의 심리를 자주 조작하며 그것에  능숙하다는 거였다. 또, 다른 여자로부터 받을 수 없는 존경과 사모함을 보여주는 여자에게는 남자가 무조건 충실하게 된다는 등 다소 이상한 발언에도 서슴없었다. 말타도 아마 그런 그의 묘한 매력에 이끌렸던 것이리라.

 

나는 그녀의 짝사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 온 목격자이자, 곁에서 응원하며 바람까지 잡아준 조력자였다. 때로 일거와 둘이 있게 되는 날엔, 그에게 말타의 속내를 은근히 언질을 주며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그러니 나를 향한 일거의 고백에 나는 더 없이 당황했다. 한참을 멍하니 일거의 얼굴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일거는 나와 말타가 그의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놀러 가 있던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내게 고백을 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전개였다. 나는 우선 말타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말타는 더없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선택을 존중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나는 그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내 선택, 내 책임을 다해야만 결말이 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바보처럼 또 한 번 사랑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하나 달랐던 게 있다면, 그때의 나는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롯이 말타 덕분이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바보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두 개의 사랑을 모두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것은 실은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었고, 사랑을 택한 나는 우정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말타는 차마 나를 보고는 말할 수 없었던지, 내게 분노에 가득 찬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짐을 정리하다 발견한 그 편지를 다시 한번 읽으며 내 마음은 무너졌다. 아문 줄 알았던 미안함이 쏟아져 나왔다.

 

또 한 번 사랑과 우정 사이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아마 또 머저리처럼 사랑을 선택하고 말 것이다. 아주 많은 미안함 뒤에 무척 깊은 행복감이 찾아올 것을 안다.

 

내가 일거로부터 받았던 사랑은 여태 다른 남자로부터는 받아보지 못했던 형태의 사랑이었다. 그는 내 영혼까지 사랑해주었고, 때로는 나의 영혼을 지배했다. 나는 그와 같은 것을 느끼고 싶다는 이유로 담배를 손에 대기도 했고, 그와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마리화나가 낳는 많은 생각들을 그와 나누며 아주 많은 지적 쾌감을 경험했다. 그런 그와 끝이 난 이유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는 바람을 피웠고, 그런데도 나를 만나러 한국에 찾아왔다. 덕분에 우리가 한국에서 같이 보낸 시간은 지옥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 지금, 아직도 나는 가끔 그를 그리워하며 특히 그가 주던 사랑이 애달파지곤 한다. 사랑의 힘은 그토록 강렬한 것일까. 여전히 나는 그 답을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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