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에 있어 그렇게 착한 편이 아니었다. 조금만 수가 틀리면 헤어지자는 말을 불쑥 꺼내 들었고, 그러다 기분이 좋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먼저 사과를 건네기도 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사랑할 때 가장 마지막에 꺼내야 하는 카드가 '이별'이라고. 아무렇게나 그 카드를 남발하면 분명 후회할 때가 올 거라는 경고였다. 나는 그 경고를 무시한 덕분에 호기롭게 먼저 꺼내든 이별 카드에 역으로 카운터 펀치를 맞곤 했다. 상대편이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그래, 헤어지자"라는 수긍을 했던 것이다.

 

사랑을 쉽게만 여겼기 때문일까. 그것보단 실은 나를 좀 더 봐달라는 투정이었을 것이다. 상대방도 그걸 아예 모르진 않았기에, 왜 그러느냐고 달래기도 하다가 종국에는 지쳐버린 채 그 카드를 받아든 것이리라. 20대 초반, 그럼에도 나는 두려운 것이 없었고, 버릇처럼 연애의 끝 무렵엔 늘 "헤어져!"를 입버릇 처럼 달고 살았다. 이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또 한 번의 가슴 아픈 이별 덕분이었다. 덧없이 끝나고 마는 사랑의 마지막 장면에 서서 나는 되물었다. 이제 이별 없이 행복한 연애를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도대체 무엇을 바꿔야 할까? 나는 "헤어져"라는 말을 "사랑해"라는 말만큼 쉽게 꺼내는 내 버릇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맞이할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참고, 또 참으리라. 상대방이 분명 잘못한 일이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보듬어 주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여덟 살이나 많은 남자와의 첫 만남은 맥주로 시작되었다. 그는 맥주는 맥주마다 꼭 맞는 잔에 따라서 마셔야 한다며, 홍대 놀이터까지 맥주잔을 들고 오는 특이한 정성을 갖춘 남자였다. 오빠보다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릴 만큼 나이 차이가 났지만, 그의 그런 고집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후에 따로 몇 번 더 만나고 났을 때, 그는 내가 맘에 든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가 싫지 않았던 나는 그와의 연애를 시작했다.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는지는 몰라도, 그와의 연애는 초반부터 내가 참아야 하는 것투성이였다. 그는 나를 어느 날엔가 다른 여자의 이름으로 불렀다. 나는 아주 불쾌했지만, 다음번에는 그러지 말라는 말로 그 일을 덮었다. 핸드폰에 남겨진 옛 여자친구의 흔적들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오히려 그를 더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그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고, 그를 채워줄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생각했다. 이 놀라운 변화 앞에 스스로 대견했던 것도 같다. 나는 나를 버리고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의 희열과 고통을 동시에 맛보았다.

 

수많은 편지를 써서 그에게 보냈고, 많은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힘썼다. 그의 어두움은 깊었지만(그는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었고, 그만큼의 어두움이 그를 늘 따라다녔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아니 뚜렷이 보더라도 그것을 감싸 안아주기 위해 더 없이 노력했다. 그 노력을 그도 알았을까. 잘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 내가 오빠에게 이렇게 많이 줄 수 있는 건 내가 여유가 많아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아주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그에게 얼마나 깊이 다가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었다. 여타의 연애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예전만큼 쉽게 이별 카드를 꺼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나는 고통받았고, 나중에는 그 고통도 사랑의 일부일까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랫말처럼, 나는 점점 지쳐갔다. 나는 그에게 끝내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별 뒤에도 수차례 그를 다시 찾았다. 헤어진 이후 맞이한 그의 생일에 케이크를 들고 그를 찾았고, 술을 잔뜩 취해 그가 보고 싶을 때면 불쑥 그를 찾아가 놀라게 했다. 우리의 사랑은 내가 참은 그만큼 끝맺기 어려워져 있었다. 나는 그의 어두움을 온전히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가 나를 영원히 채워줄 수 없을 거란 것도 알았다. 그런데도 그를 계속 찾았던 것은 몹쓸 습관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와의 몇 번의 재회 끝에 이제는 정말로 끝을 내야 한다는 것을 예감했다. 그에게 '마지막'이라는 말을 뺀 채 만날 것을 제안했고,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절하지 않았다. 마지막 저녁을 먹으며, 그는 마치 예전처럼 자신의 일상을 내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우리의 미지근한 사랑을 끝내야 함을, 사랑이 한 권의 책이라면 이제 책장을 덮어야 할 때가 온 것을 알았다. 그의 말을 끊고, 내가 말을 이었다.

 

"오빠, 내가 오늘 오빠를 만나자고 한 건, 이 이야기를 잘 끝내기 위해서야. 우리의 사랑이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계속해서 그 책을 붙잡고 덮지 못한 채 한참을 있었어. 하지만 이제는 다른 책을 꺼내볼 수 있을 것 같아. 그 다음 장이 백지일지라도, 나는 이번 장을 덮을 자신이 생겼어."

 

그는 묵묵히 내 말을 들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꺼냈던 자신이 민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그렇지 않았기를 바란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준비한 선물을 건네었고, 우리는 가벼운 포옹을 끝으로 '진짜' 헤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멀어지는 그를 보면서, 나는 내 삶의 중요한 챕터 하나가 끝나고 있음을 알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저 잘 견뎌내었다고, 충분히 사랑했고, 많이 자랄 수 있었다고, 스스로 오히려 대견해 했다. 그는 멀어져 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나에 대한 원망이나, 더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보다 되려,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기 위해 드디어 찾아온 공백이나 잘 마무리된 이야기의 끝으로 받아들였기를.

 

나는 그로 인해 사랑이 끝나더라도 상대방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별의 아픔에 취해 나 자신을 내팽개치는 몹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었다. 씁쓸한 사랑의 끝이 아니라, 담백한 이별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그'를 좋은 책으로 추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되고 나서였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쉽게 이별을 내뱉지 않고, 끝까지 상대방을 위하고 아끼는 마음. 그 마음이 나도, 상대방도 자라게 하는 사랑의 방법임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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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아빠가 좋은지 엄마가 좋은지를 선택하는 가벼운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부터,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할지 꿈을 좇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할지를 묻는 무거운 질문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처럼 운명론적인 질문도 존재한다. 이때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후의 결과는 온전히 내 책임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2012년 여름, 머나먼 타국 땅 네덜란드에서 내가 마주한 선택지는 사랑과 우정, 두 가지였다. 우정은 매우 특별했고, 사랑은 무척 신선했다.

 

 

복학한 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나는 교환학생으로 파견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싱글이었고, 그래서 준비 과정에서의 마음고생은 없었다. 토플 성적과 자기소개서, 간단한 면접의 과정을 거친 뒤 무사히 원하던 나라, 원하던 학교에 배정되었다. 마리화나와 매춘이 합법인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로 1년간에 걸친 여정이었다. 당시 파견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온종일 영어로만 의사소통해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천혜의 조건이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전에 없이 더욱 자유로워졌다.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척이나 행복했다. 내 자유로운 사상과 거침없는 표현에 오히려 그들이 내게 유러피안 소울(European Soul)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학생 전원에게 주어지는 널찍한 기숙사, 학교에서 조금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자리하고 있는 커피숍(네덜란드에서는 마리화나를 취급하는 곳을 이렇게 칭한다), 교회 바로 앞에서 비키니만 걸치고 매춘을 시도 중인 레드라잇디스트릭트까지. 네덜란드가 내게 선사한 자유는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6개월이 정신없이 지나는 동안 제일 가까워진 친구는 스페인에서 온 말타(Marta)였다. 나이가 같고, 관심사도 비슷했던 우리는 온종일 붙어 있어도 계속 깔깔댈 정도로 친해졌다. 나중에는 '같이 산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한국에서도 이처럼 가까웠던 친구는 없었을 정도였다. 말타와 함께 있으면 행복했고, 나는 그 행복이 끝나지 않으리라고 바보처럼 믿었다. 이번에도 관계의 끝은 내 쪽의 실수 때문에 찾아왔다. 그렇다. 사랑이었다. 사랑은 너무나도 간단히 우정을 위협했다.

 

말타에게는 은밀히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네덜란드에 이민을 온 일거(Iigar)라는 아이였다. 우리는 자주 술도 함께 마시고 놀러도 다녔다. 일거는 조금 어둡고 시니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외모는 꽤 준수한 편이었고, 어린 시절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던 덕분에 몸도 다부졌다. 우리와 친해지고 난 다음에는 특정 사안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자주 내비치곤 했는데, 그 견해들이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똑똑한 여자는 남자의 심리를 자주 조작하며 그것에  능숙하다는 거였다. 또, 다른 여자로부터 받을 수 없는 존경과 사모함을 보여주는 여자에게는 남자가 무조건 충실하게 된다는 등 다소 이상한 발언에도 서슴없었다. 말타도 아마 그런 그의 묘한 매력에 이끌렸던 것이리라.

 

나는 그녀의 짝사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 온 목격자이자, 곁에서 응원하며 바람까지 잡아준 조력자였다. 때로 일거와 둘이 있게 되는 날엔, 그에게 말타의 속내를 은근히 언질을 주며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그러니 나를 향한 일거의 고백에 나는 더 없이 당황했다. 한참을 멍하니 일거의 얼굴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일거는 나와 말타가 그의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놀러 가 있던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내게 고백을 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전개였다. 나는 우선 말타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말타는 더없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선택을 존중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나는 그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내 선택, 내 책임을 다해야만 결말이 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바보처럼 또 한 번 사랑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하나 달랐던 게 있다면, 그때의 나는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롯이 말타 덕분이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바보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두 개의 사랑을 모두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것은 실은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었고, 사랑을 택한 나는 우정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말타는 차마 나를 보고는 말할 수 없었던지, 내게 분노에 가득 찬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짐을 정리하다 발견한 그 편지를 다시 한번 읽으며 내 마음은 무너졌다. 아문 줄 알았던 미안함이 쏟아져 나왔다.

 

또 한 번 사랑과 우정 사이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아마 또 머저리처럼 사랑을 선택하고 말 것이다. 아주 많은 미안함 뒤에 무척 깊은 행복감이 찾아올 것을 안다.

 

내가 일거로부터 받았던 사랑은 여태 다른 남자로부터는 받아보지 못했던 형태의 사랑이었다. 그는 내 영혼까지 사랑해주었고, 때로는 나의 영혼을 지배했다. 나는 그와 같은 것을 느끼고 싶다는 이유로 담배를 손에 대기도 했고, 그와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마리화나가 낳는 많은 생각들을 그와 나누며 아주 많은 지적 쾌감을 경험했다. 그런 그와 끝이 난 이유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는 바람을 피웠고, 그런데도 나를 만나러 한국에 찾아왔다. 덕분에 우리가 한국에서 같이 보낸 시간은 지옥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 지금, 아직도 나는 가끔 그를 그리워하며 특히 그가 주던 사랑이 애달파지곤 한다. 사랑의 힘은 그토록 강렬한 것일까. 여전히 나는 그 답을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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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연극 연습 이외의 시간에도 만났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와 함께면 더는 외롭지 않았다. '외롭다고 사람을 만나선 안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여태 외로워서 만난 남자들과는 모두 얼마 되지 않아 헤어졌다. 반대로, 그는 내가 커다란 고독 끝에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고 있을 즈음에 나타났다. 즉, 외로워서 만난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내 어딜 가든 꼭 붙어 다니는 연인이 되었다. 나중에는 그가 내가 사는 건물의 다른 호수에 이사를 오기도 했다. 우리는 동거 아닌 동거를 즐겼다. 부모님이 찾아오는 날이면 그는 자기 방에서, 나는 내 방에서 머물며 짜릿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모님의 얼굴을 본 남자친구도 그가 유일하다. 엄마는 그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아마 착해 보이는 용모와 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아주 착했다. 나중에는 그 착함을 내가 짓밟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순진하고 충실했으며,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여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잘 알았다. 나는 그의 사랑 속에서 첫사랑으로부터 받은 모든 아픔을 치유했다. 우리는 같은 수업을 들었고,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같이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이제야 인정하는 거지만, 그와의 이별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그는 군대에 입대했고, 나는 그의 부재를 근근이 버텼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예전처럼 슬프진 않았지만, 그가 채워주던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하지도 않았다.

 

어느 봄날, 그가 없는 동안 입학한 새내기 중 유난히 외모가 출중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그 아이의 "선배, 연락하면 밥 사주는 거예요?"라는 귀여운 발언과 함께 서로 자연스레 번호를 교환했다. 나는 오랜만에 설렜다. 그 아이와 나는 영화 한 편을 봤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아이에게 호감을 품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하필이면 그 사람이 입대한 내 남자친구와 친한 여자아이였다는 것이다. 그의 안부 전화에 여자아이는 나의 행실을 문제 삼았고, 나는 그의 원망 어린 질책을 받아야 했다.

 

잘못한 건 나였지만, 나는 잘못을 빌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오해한다며 그를 비난하고 몰아세웠다. 비겁한 행동이었다. 나는 그에게 차가운 이별을 선언했고, 그는 나를 붙잡기 위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 데도 말이다. 나는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갔다. 그는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못했다. 바람 아닌 바람이 부른 결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새로운 남자아이와 잘 되지도 않았다. 어설프게 연락이 끊겼는데,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나쁜 소문이 날 것이 무서워 도망친 것이라고 했다. 어찌 되었건, 나는 또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오롯이 나를 사랑해주던 사람을 뻥 차버리고 떠난 벌을 오래도록 받았다. 수차례 외롭다고 사람을 만나고 만 것이다. 결과는 모조리 실패였다. 사랑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다섯 번째 즈음의 연애가 끝날 무렵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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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 언저리에 휴학을 하고 귀향한 나는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의 증세를 보였다. 방에 틀어박혀서 책을 봐도 울고, 영화를 봐도 울었다.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꼬박 6개월이 지났고, 어느덧 밖은 봄이었다. 온몸이 우울에 젖어 있던 나는, 그제야 조금씩 뽀송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학교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지만, 서울은 그리웠다. 그래서 휴학을 한 상태로 서울에 올라가 영어 학원에 다녔다. 학원 근처에 숙소를 잡고, 학원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아르바이트 장소는 잠실역 안쪽에 자리한 XX 모바일 샵이었다. 당시로써는 꽤 괜찮은 시급에 일도 쉬운 편이었다. 다른 동기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산다는 게 그렇게 기분 나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오히려 혼자만의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다. 학원에서도,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늘 혼자였다. 그게 싫지 않았다. 어쩌면 둘이었다가 혼자가 되는 아픔을 심하게 겪고 난 덕분에 혼자 있을 때도 면역력이 생긴 걸지도 몰랐다. 아픔에도 일종의 면역력이 필요하다. 한번 아파본 나는 더는 그 전처럼 앓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 겪었던 우울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울은 굉장히 객관적인 현실성을 선사해줬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 알게 해줬기 때문이다. 한편, 우울은 과거지향적이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후회와 절망감을 맛보는 일이다. 사랑이 끝난 것을 온전히 자신의 탓으로 돌렸던 나는 가슴 한 곳이 찌르듯 아픈 느낌을 매일 마주해야만 했다. 그렇게 바닥을 치는 경험 이후에, 나는 나를 좀 더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슬퍼도 웃는 법을 알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는 3개월 정도만 하고 그만뒀다. 다시 학교 근처로 숙소를 옮겼다. 때는 여름이었다. 학교에선 방학 끝 무렵에 올릴 중국어 원어 연극을 위한 학생 모집에 한창이었다. 본 전공이었던 중국어 공부도 할 겸, 나는 배우로 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번째 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운명처럼, 우울의 정체를 알고 난 뒤 조금 더 단단해진 나는 웃음이 해맑은 한 소년에게 첫눈에 호감을 느꼈다.

 

Posted by 호양

[본성, 성격, 사랑 ... 지나고 보면 알게 되는 것들]




살면서 겪게 되는 이런저런 일들이 과연 어떤 흔적으로 내게 남을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아직 어리다면 어리지만 너무 일찍 철들어 버렸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나는 생각한다. 바로 그런 점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인간을 완성시켜 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혹은 '완성되었다고 믿는' 인간은 그래서 쉬이 바뀌기 힘든 거라고. 어찌 되었건 딱 하나 분명한 건, 지나고 보면 알게 된다는 거다. 그 흔적들이 어떻게 나를 완성시켰고 그것이 별 것인지 별 것 아닌지에 대해.


본성으로 거듭난 사람의 성격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본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로는 가정 환경, 인간 관계, 사회 생활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가정 환경'에 방점을 두고 싶다. 인간이 제 몸뚱아리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유아기 시절부터 자신은 다 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결국 함께 하는 건 '가족'이다. 조금 더 어릴때는 '그게 다는 아닐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알겠다. '가정 환경'이란 요소가 한 인간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건 8할 이상은 작용한다는 것을. 어떤 가치관의 부모 아래에서, 어떤 유형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어떤 역할을 하며 자라왔는지에 따라 사람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신기한 건 유난히 '한국 사람'들은 그 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인데, 이 부분이 사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살아가며 하등 필요 없어 보이는 지문조차 사람마다 다를진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같을 수 있는지.)


앞서 말했듯, 인간의 성격은 '본성'의 문제이자 '가정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래서 의문이 든다. 이것을 어떻게 타인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말이다. '왜 당신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 라는 질문은 그래서 하릴없이 처량할 뿐이다. 이해해주길 바란 것이 애초에 잘못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 싶다는 것도 자기애에서 비롯된 욕심일 수 있다. 이 모든 이해 불가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유일하게도 '사랑'이다. 온전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희생만이 이 모든 본성과 가정 환경 혹은 그보다 힘이 셀지도 모르는 다른 요소들을 죄다 이겨가며 한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는 어마어마한 욕구를 낳는다. 그리고 이 역시 지나고 보면 알게 된다. 그것이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이와 관련하여 가장 불쌍한 경우는, 이런 불확실성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나 그 필요성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경우다. 더 심한 경우는 아예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그래서 정답이 있냐고? 지나고 보면 알게 된다. 인간은 자신만의 정답을 찾기 마련이며, 가장 비슷한 정답을 찾은 다른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이다지도 쉬워 보이는, 그래서 심하게는 무책임해 보이는 결론이지만, 실상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정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 무진장 어렵다는 걸. 그러니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단히 '지나는' 연습을, 그것도 '잘' 지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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