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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27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겨울을 난다
  2. 2013.11.12 Winter: 겨울

대학교 신입생 OT는 늘 엊그제 일인 것 같다. 나는 시골에서 올라온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한 교실에는 마흔 여 명의 새내기들이 몇몇 조로 나뉘어 앉아 있었고, 고작 한두살 많은 학생들이 선배랍시고 수강 신청 방법 같은 걸 알려주었다. 이어서 일대일로 대학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를 해준다는 취지의 멘토와 멘티 프로그램도 소개되었다. 직속 선후배가 생기는 셈이었다. 나는 한눈에 봐도 모범생 티가 나는 남자 선배에게 배정되었다. 선배와는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대학교 1학년 생활 중에 내가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는 사건이다. 나는 곧 다른 대학교 출신의 학생과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같은 학교 아이들과는 멀어졌다. 지금도 대학 생활 가운데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1학년 때 다른 학교 학생과 연애한 것을 꼽을 정도다. 그 연애는 나를 본교에서 발 붙일 틈도 없는 아웃사이더로 만들었다. 한창 동기들과 친분을 쌓아야 할 시점인 1학년 1학기를 철 없는 사랑에 빠져 보낸 나는 자연스레 학교 내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결국, 연애는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학교에 정을 붙이며 다닐 구실이 없었던 나는 휴학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혹자는 연애 실패 때문에 휴학까지 했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한 학기를 온전히 바친 연애 상대가 사라져 버린 서울은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웠다. 나는 그 연애의 끝을 질질 울면서 맞이했다. 처음에는 휴학에 대한 엄마의 반대가 심했다. 그깟 일로 휴학이라니, 라는 태도였다. 오죽하면 지도 교수님을 찾아가 면담까지 했다. 지도 교수님은 다행히 내 편을 들어줬고, 두 모녀는 그렇게 슬픈 고향 행을 택했다. 고향에 내려온 뒤엔 책과 영화에만 파묻혀 지냈다. 모든 실연의 약은 시간이라고 했던가. 침대에 파묻혀 책만 보던 나는 6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원래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잘 몰라서, 아직 어려서 지독히도 아팠던 그 겨울. 첫 사랑에 실패한 나의 겨울은 무척 추웠다. 그때 나는 기도드렸다. '올해의 겨울이 제가 맞이하는 겨울 가운데 가장 추운 겨울이 되게 해주세요' 라고. 그 기도가 통한 것인지, 여태 그때만큼 처절하게 슬픈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우리는 모두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겨울을 나는 법이라는 걸, 그때 배웠다. 누구에게나 유난히 추운 겨울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앞으로의 겨울을 잘 버텨내게 된 것처럼, 당신도 나름의 방식으로 겨울을 나는 법을 익힐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당신의 겨울이 너무 춥지는 않기를.

 

 

덧. 나는 대학 1학년 때는 되도록 연애를 하지 말 것을 후배들에게 권하곤 한다. 같은 학교 친구들을 두루 사귀면서 자신의 본교에 정을 붙여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했던 실수를 누군가가 반복하지 않기를. 그래서 슬픔을 예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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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양

2013. 11. 12. 21:49 호양의/일기

Winter: 겨울



가을 지나, 곧 겨울이다.

손끝과 입술이 거칠어지는 계절.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 들어선 카페에는

잔잔한 노래, 혹은 익숙한 캐롤들이 울려퍼지고

일어났으나 어느새 잊고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는 계절.


하루, 또 하루가 지나가고
이 겨울이 지나가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라는 가사를 듣고 있으니

겨울이 오기 전 이별을 겪었나보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 좋은 계절.


추운 건 정말이지 싫지만

소소한 감정의 기복을 느낄 수 있는

사계절이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감사하면서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한 해를 무사히 나야겠다.


*





*

차가운 새벽공길 지나
어두운 밤거리를 달려
숨차게 언덕을 올라 하늘을 바라다보면
그대뿐입니다.

아나요 얼마나 힘겨운지
침묵이 무엇을 말하는지
힘겨운 새벽, 아침이 밝아올 때 쯤이면
조금 나아지겠죠.

하루, 또 하루가 지나가고
이 겨울이 지나가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아득하기만 한 그대의 따스한 손길
쉽게 잊지는 못할겁니다 아마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
그대란 사람의 흔적들..
이렇게 될 걸 우리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행복했었을까요.

하루, 또 하루가 지나가고
이 겨울이 지나가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너와 수줍게 입맞추던 밤
서툴고 예민했었던 그 시절의 우린 없지만
문득 비좁은 시간의 틈 그 사이로
새어들던 아름다운 그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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