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24. 21:40 호양의/영화
'노예 12년'이 들려주는 '노예'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
'노예 12년'이 들려주는 '노예'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
영화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는 주인공 솔로몬 노섭이 쓴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이 쓰여진 것이 1853년이니, 15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전해지는 감동은 전혀 낡지 않았다.
<노예 12년>은 영화 <헝거 Hunger> <셰임 Shame>으로 이름을 알린 감독 스티브 맥퀸의 세번째 작품으로, 자유인이었던 솔로먼 노섭이 미국 남쪽으로 납치되어 12년간 노예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노예제도가 금지되었음에도, 북부의 흑인들을 납치하여 남부로 인신매매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고 한다. 그 희생양이 된 것이 솔로먼 노섭이었던 셈. 그는 하루 아침에 자유인 '솔로몬'에서 노예 '플랫'으로 전락한다.
노예. 사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유인인 우리는 '노예'라는 신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드물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보다는 영화가 묘사하는 개별 인물들 - 흑인 노예들은 물론, 다양한 백인들까지 - 의 모습이 더욱 흥미로웠다.
'노예 제도'라는 부당한 장치 아래 인간은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똑같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는가.
영화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섬뜩하게 했던 건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농장일을 하게 된 사람들의 모습이었는데, 이들은 똑같은 일을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너희 흑인 노예들과는 다르다'라는 태도를 보인다. (브래드 피트 제외) 솔로몬 노섭이나 팻시의 지극히 '인간적인' 부탁도 끝내 외면한다. 이때, 나는 이런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과연 누가 더 '노예스러운'가.
요즘 같은 시대에 '인간'을 '노예'로 만들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종종 인간은 자발적으로 무언가의 '노예'가 된다. '돈'이나 '성', '명예' 따위 말이다.
<노예 12년>은 '노예'를 넘어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에서 솔로먼 노섭은 12년간의 노예 생활을 했지만 끝내 '인간다운 인간'이었다. 그는 팻시의 부탁을 거절함으로써 살인이란 부덕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수없는 시련 끝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자유인이 된 이후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할 이유는 다분하다.
실제로 영화는 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6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8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여우조연상, 각색상 등 최종 3관왕을 차지했으며,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인간'에 대한 영화를 감히 수상 내역만으로 판단하겠냐만은, 대내외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인 것만은 충분히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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