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에 전해진 편지들

 

영화는 자살한 언니 미사키(히로세 스즈 분)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례식에서 언니의 고등학교 동창회 초대장을 받은 동생 유리(마츠 다카코 분)는 언니의 부고를 전하기 위해 동창회에 참석한다. 하지만 유리를 미사키로 착각한 동창들 때문에 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돌아오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 유리는 어린 시절 짝사랑하던 언니의 동창생 오토사카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를 만나고, 얼떨결에 연락처도 교환한다. 쿄시로는 유리에게 자신의 소설책 이야기를 묻고, 아직까지도 (미사키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문자를 본 유리의 남편(안노 히데야키 분)은 유리의 핸드폰을 망가뜨리고, 연락할 방법이 없어진 유리는 쿄시로의 명함에 적힌 주소로 언니 미사키인 척, 편지를 보낸다.

 

자살한 언니의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한 유리. 자신이 유리라는 것을 밝히지 못한 채 돌아오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언니의 동창생 쿄시로에게 언니 미사키인 척, 편지를 보내는 유리.

 

이때 유리는 쿄시로가 남편이 있는 집으로 편지를 할까 두려워 주소는 밝히지 않는다. 이에 쿄시로는 졸업 앨범 뒤편에 적힌 미사키의 주소로 답장을 보낸다. 그곳은 미사키의 딸 아유미(히로세 스즈 분)와 유리의 딸 소요카(모리 나나 분)가 조부모님과 지내고 있는 시골집이었고, 편지를 받아본 아유미와 소요카는 미사키인 척하며 쿄시로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쿄시로는 고교 시절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유리, 미사키와의 추억을 편지에 적어 전하며 첫사랑의 기억을 되짚는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쿄시로(카미키 류노스케 분)는 전학 후 가입한 생물부 동아리에서 후배 유리를 만나 친해졌고, 유리와 함께 동네 개울가에서 곤충 채집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을 지나던 유리의 언니 미사키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고교 시절의 유리, 미사키, 쿄시로. 쿄시로는 미사키를, 유리는 쿄시로를 짝사랑했다.
미사키인 척 쿄시로에게 편지를 보내는 아유미와 소요카.

 

하지만 유리와 아유미로부터 동시에 편지를 받으며 서로 다른 필체와 상반된 내용에 의심을 품게 된 쿄시로는 직접 유리를 찾아가게 된다. 이때 쿄시로는 유리가 미사키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음을 밝히고, 유리는 쿄시로에게 미사키가 한 달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음을 알려준다. 이에 쿄시로는 고교 시절부터 미사키에게 보냈던 러브레터들과 대학교 시절 잠깐 사귀었던 미사키와의 경험을 토대로 <미사키>라는 소설을 썼음을 전한다. 또, 이 소설로 데뷔를 할 수 있었지만 25년이 흐른 지금도 오로지 미사키에 대한 글밖에 쓸 수 없음을 고백한다.


마지막 편지, 추억을 되짚다

 

미사키의 부고를 전해들은 뒤, 쿄시로는 과거 미사키가 살았던 집과 함께 다니던 고등학교를 찾는다. 그리고 거기서 미사키를 쏙 빼닮은 아유미와 유리를 쏙 빼닮은 소요카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쿄시로를 한눈에 알아본 아유미는 그를 시골집으로 초대하고, 미사키의 영정 사진을 보여준다. 또, 미사키가 간직하고 있던 편지들을 건네주며 그 편지들이 엄마의 보물이었다고 말한다.

 

쿄시로가 미사키와의 추억을 되짚으며 찾은 고등학교에서 우연히 만난 아유미와 소요카.

 

아유미는 쿄시로가 다녀가고 나서야 엄마 미사키가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읽을 용기를 낸다. 그 편지는 미사키가 고등학교 졸업식 축사 때 발표한 연설문이었다. 미사키가 쓰고, 쿄시로가 고치는 것을 도와준 글. 아래 포스터는 그 연설문의 전문이다. 이 글을 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미사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쿄시로가 조금만 더 일찍 미사키를 찾았다면, 미사키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25년간 미사키 한 사람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한 쿄시로와 함께였다면, 미사키는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미사키가 쓰고 쿄시로가 고친 졸업식 축사 연설문.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미사키와 쿄시로가 어떻게 사귀고 또 헤어지게 되었는지, 왜 미사키는 도망치듯 폭력적인 남편 아토(토요카와 에츠시 분)와 결혼했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자살을 택한 전 부인을 별 볼 일 없는 여자였다고 말해 버리는 무지막지한 남자를 남편으로 선택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손편지로 전하는 아날로그 감성

 

<라스트 레터>는 <러브 레터>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이다. "오겡끼데스까(お元気ですか)"라는 대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실제로 <러브 레터>를 보지 않은 나로서는 두 영화를 비교할 수 없다. 다만, 두 영화 모두 '편지'라는 매체가 주는 아련함과 '첫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음은 명백한 듯하다.

<라스트 레터>는 각종 SNS, 이메일, 메신저로 편지가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21세기에 '손편지'가 전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영화다. 언제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었던가, 반추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대학생 시절 1년간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며 참 많은 엽서와 손편지를 한국으로 썼었더랬다. 행여나 촌스럽게 느껴지진 않을까, 벅차오르는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쓴 적도 많았다. 그때 편지를 전하던 사람들 가운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아쉽다. 다시 한번, 사랑하는 사람 혹은 그리운 사람이 생긴다면 그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싶다. <라스트 레터>는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다.

 


[라스트 레터] 메인 예고편

https://youtu.be/1BWo88h4C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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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지금, 당신이 꿈꾸던 삶을 살고 있나요?



  이런 종류의 영화를 사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트 영화(혹은 예술 영화)라는 말을 좋아하긴 하는데, 그럼 어떤 영화가 '예술'이라 불릴만하고 또 어떤 영화는 아닌가에 대한 기준이 사실 명확하게 서지 않은 나로서는 이 역시 그다지 정확한 명칭은 아닌듯싶다. 어쨌거나, 보고 나면 잔잔했던 일상에 조그맣게나마 파문을 일게 하고, 스스로 여러 질문을 던지게 하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그런 영화다.



스포일 주의



  스위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살아오던 주인공 레이몬드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 분)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강물로 뛰어들려고 하던 한 여인을 구한다. 그 여인은 레이몬드를 따라 학교에 왔다가 자신의 빨간 코트를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리는데, 레이몬드는 그런 그녀에게 끌려 수업도 내팽개친 채 코트만을 들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녀. 레이몬드는 그 어떤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그녀의 코트를 확인하고, 그 안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한다.



  책의 첫 장에 찍힌 직인에 따라 헌책방에 도착한 레이몬드는 그곳에서 책 속에 끼워져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표를 보게 된다. 곧바로 기차역으로 향한 그는 무작정 열차에 올라타고, 리스본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내내 책을 읽는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제목의 책은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 분)라는 포르투갈 사람이 쓴 것으로, 레이몬드를 단숨에 사로잡는다.

 사실 레이몬드가 이토록 무모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가 지루하고, 외로우며, 공허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무미건조한 일상으로부터 자신을 깨워줄 무언가가 절실했으리라.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그의 손에 쥐어진 이 한 권의 책이 바로 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게 리스본에 도착한 레이몬드는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의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그의 여동생 아드리아나(샬롯 램플링 분)를 만난다. 아마데우는 이미 죽은 뒤였지만, 레이몬드는 이후에도 계속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을 한 명씩 만나면서 아마데우의 삶을 되짚는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집요함으로, 자기 일과 삶도 내팽개친 채 아마데우에 대해 아는 것이 과연 레이몬드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이 무엇이건, 레이몬드는 아마데우의 삶에 깊이 매료된다. 자신의 인생이 그의 것에 비추어 보았을 때, 보잘 것 없이 느껴진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아마데우는 자신이 가진 신념에 따라 행동할 줄 알았고, 따뜻한 마음과 함께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철학자이자 의사였고, 혁명가이자 작가였다. 무엇보다도,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과거의 아마데우가 현재의 레이몬드를 통해 되살아나는 우연은 새로운 운명을 낳는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극적인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삶에 완전히 새로운 빛을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놀라운 고요함 속엔 고결함이 있다.











  아마데우가 적은 것처럼,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수많은 사소한, 그러나 운명을 결정짓는 우연이 등장한다. 비 오는 날, 레이몬드와 한 여인과의 만남이 그랬고, 그로써 레이몬드가 손에 넣게 된 아마데우의 책이 그랬다. 이후 리스본을 헤매던 레이몬드는 부서진 안경을 수리하기 위해 찾아간 안경원에서 마리아나(마르티나 게덱)를 만난다. 그녀의 삼촌은 아마데우와 함께 레지스탕스(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혁명 단체) 활동을 하던 사람이었으니, 그렇게 그들의 우연은 인연으로 연결된다.

  며칠 후, 아마데우의 인생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마친 레이몬드는 스위스로 돌아가려는 기차 앞에 서고, 마리아나는 그런 그를 배웅한다. 기차가 떠나기 5분 전, 공허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탄식을 내뱉는 레이몬드에게 마리아나는 말한다. "그럼 그냥 여기 있지 그래요? Why don't you just stay?"






"지금, 당신이 꿈꾸던 삶을 살고 있나요?"라는 포스터의 문구에 마음이 간다. 레이몬드는 아마데우에 대해 알아 가면서 자신이 삶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자꾸만 돌아보게 되었던 게 아닐까.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사실 정확히 나열할 수 없다. 마치 도입부에서 이 영화의 장르를 규명 짓기 어려웠듯,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이 영화가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마지막 마리아나의 대사다. 지금,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기꺼이 그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 나를 전율시켰기 때문이다. 아마 레이몬드도 그랬으리라.


'리스본행 야간열차', 지금, 당신이 꿈꾸던 삶을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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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Her)', 누가 감히 이들의 사랑을 재단하는가



영화 '그녀(Her)'에 대한 평가 중 '가장 독창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말에 잔뜩 기대했다. 너도나도 하는 사랑이지만, 내 사랑만큼은 그 누구의 것보다 특별하다 여기는 것이 인간이기에, 도대체 어떤 사랑을 '가장 독창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아니, 애초에 '사랑'을 두고 '독창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기는 한 걸까? 포스터는 전혀 이 의문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강렬한 붉은빛 배경에 호아킨 피닉스의 그윽한 눈빛이 인상적이기는 했다만, 서툰 당신을 안아줄 이름이라는 '그녀'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스포일 주의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왜 포스터에 정작 그녀는 없는지 알게 되었다. 그건 그녀가 인공지능 OS(Operating System)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녀는 살아 숨 쉬는 인간이 아니라 컴퓨터 속에 존재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듯하다. 그녀는 분명 프로그래밍이 된 소프트웨어이지만, 감정과 직감을 가지고 있어 인간과 마찬가지로 경험에 따라 변화(혹은 진화)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그녀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출연)'는 前 부인 캐서린(루니 마라 분)과의 이혼을 겪으며 괴로워하던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에게 큰 위안이 되어준다. 역으로, 그녀는 그를 통해 새로운 감정들을 배워간다. 점차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키워가던 이들은 결국 사랑, 혹은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법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인간과 OS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일까?





  이 문제에 관해 감독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는 흑과 백의 논리를 들어 답하지 않는다. 그녀를 비롯한 영화 속 모든 OS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느낀 부분은 테오도르가 사만다와의 관계를 다른 이들에게 말할 때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별반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 역시 조금은 뜻밖이었다)

  어쨌거나 이후 테오도르는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하루 대부분의 일과를 사만다와 함께하며 그녀와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前 부인과의 이별 후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던 그는 매사 긍정적인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점차 밝아진다. 마침내 이혼 서류에 서명하기 위해 캐서린을 만나러 가는 길, 그녀와 통화를 하는 그의 여유로운 목소리는 잠시나마 이 둘의 핑크빛 미래를 그려보게 한다. 물론 테오도르와 캐서린의 재회에 대해 왠지 초조해하는 듯한 사만다목소리가 마냥 행복한 결말에의 추측을 방해하긴 하지만.







  사만다의 직감이 맞았던 걸까. 그녀 이야기를 털어놓는 테오도르에게 캐서린은 독설을 퍼붓는다. "당신은 늘 순종적인 여자를 원했지" "당신은 단지 진짜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거야"라며 인간과 OS 간의 사랑에 대해 영화 속 인물 중 처음으로 불쾌함을 표한다. 가슴을 후벼 파는 캐서린의 말에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 관객 대부분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사랑은 진짜일까? 아니, '진짜 사랑'이 도대체 뭐지?

  테오도르의 절친한 친구로 등장하는 에이미(에이미 아담스 분)는 이러한 철학적 고민에 '그까짓 것(Fuck it)'이란 태도로 응수한다. 어차피 길지 않은 인생, 남 눈치 보지 말고 나 좋은 것 하며 행복하게 살자는 거다. 에이미의 조언에 힘을 얻은 테오도르는 잠깐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고 사만다와의 관계를 지속해나간다.



 




 

  하지만 '인간'과 'OS'는 분명 서로 다른 존재다.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그렇고, '그'와 '그녀'가 그렇듯. 어느 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잠시 사라진 사만다를 간절하게 찾던 테오도르는 마침내 이를 깨닫게 된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프로그램인 그녀는 그와 이야기하는 동시에 수천 명의 사람과 대화하며, 또 수백 명의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넌 내 것이거나, 아니면 내 것이 아니야(You are mine or you are not mine)"라는 그의 말에 "난 네 것이야, 그리고 난 네 것이 아니야(I am yours and I am not yours.)"라 대답하는 그녀. 이들은 서로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 방법과 방향이 다르기에, 결코 함께 할 수 없다.

  여기서 생각해볼 만한 부분은 바로 영화 속 사랑을 바라보는 사만다의 관점이 테오도르의 관점에 비해 부족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에 '그녀'는 '가부장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Akiko Stehrenberger가 새롭게 제시한 '그녀'의 포스터는 확실히 흥미롭다. 그를 만지는 그녀의 손, 그리고 그의 귀에 꽂힌 이어폰의 확대를 통해 그보다는 그녀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이들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지만, 이를 두고 '슬프다'고 말하기도 모호한 것은 그만큼 난해한 결말 때문이다. 테오도르는 떠나야 하는 사만다를 향해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한 것처럼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다(I've never loved anyone the way I loved you)"는 고백을 한 뒤, 얼마지 않아 캐서린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에이미와 함께 사만다와 이야기를 나누던 옥상에 올라 한숨을 짓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로써 관객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대체 그와 그녀의 사랑은 뭐였지? 그와 캐서린의 관계는? 그와 에이미는 또 뭐지? 아,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고, 관계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본디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는 수많은 질문을 낳지만, 그 어떤 명확한 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존 말코비치 되기 Being John Malkovich>가 그랬고, <어댑테이션 Adaptation>이 그랬다. 관객 자신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답을 찾으면 그뿐이라는 걸까. 개인적으로 에이미의 대사가 적절한 답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에이미는 자신과 사만다와의 관계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테오도르에게 답한다. "글쎄, 나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지. 넌 어떤데?"라고. 그래, 적어도 사랑에 관해 정해진 답은 없다. 내가 그 사랑 덕분에 행복하다면 그뿐, 남의 의견 따위 무시해도 좋다. 사랑은 그 사랑에 속한 이들이 함께 정의해 나가는 거니까.






영화 속 잔잔하게 흐르던 그와 그녀의 음악 "The Moon Song"을 다시 한 번 들으며, 포스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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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센던스': 그는 윌이었을까?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굳이 트랜센던스가 어떤 줄거리의 영화인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영화관으로 향했다. '모든 상상을 초월한다'는 꽤 흥미로운 카피의 영화는 정말 모든 관객의 상상을 초월했을까? 답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생각할 거리는 다수 던져준 느낌이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의 엄청난 발전, 그리고 그에 따라 인간의 뇌를 컴퓨터로 이식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설정 아래, 영화는 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스포일 주의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남자 맥스(폴 베타니 역)는 폐허가 되어버린 집을 찾아가는데, 이 집은 인공지능 연구가 윌(조니 뎁 역)과 그의 부인 에블린(레베카 홀 역)이 함께 살던 곳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액정 화면 깨진 채 땅에 널브러져 있는 휴대전화, 고작 문 받침대로 쓰이는 컴퓨터 키보드 등 현재 우리의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장비들이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라고 궁금하게 만드는 아주 쉬운 배경 장치인 셈.


맥스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꽤 오래된 듯한 집의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활짝 피어있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긴다. 그는 윌과 에블린이 신념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는 위대한 과학자였다고 평한다.


5년 전, 윌은 인류가 수억 년에 걸쳐 이룬 지적능력을 초월하는 것은 물론, 지각능력까지 갖춘 슈퍼컴 '트랜센던스'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그런데 이날,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던 곳을 포함하여 인공지능을 다루던 연구소 곳곳을 대상으로 테러가 일어난다. 인공지능 연구의 확산이 인류의 멸망이라 주장하는 반()과학단체 RIFT의 소행으로, 이 때문에 윌은 방사능에 노출되어 죽음의 문턱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테러에 의한 죽음 직전에 한 과학자가 보낸 인공지능 관련 연구 결과로 원숭이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윌과 에블린은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 시켜 그를 살려내고자 한다.


처음에는 실패의 위험성을 우려하여 그녀를 돕기를 꺼리던 맥스 역시 이들을 돕고, 그렇게 윌은 컴퓨터 내에서 '부활'한다. 그러나 깨어난 지 15분 만에 증권 및 금융 관련 정보를 알고자 하고, 온라인에 접속하여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윌 답지 않은' 행동에 맥스는 '이건 윌이 아닐지도 몰라!'라는 강한 의문을 표하며 트랜센던스의 작동을 정지하려 한다. 하지만 윌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에블린은 맥스에게 '나가라'고 외친다.


씁쓸한 마음에 술집을 방황하던 맥스는 RIFT 조직에 의해 납치를 당하고, 그들은 어떻게든 트랜센던스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맥스에게 자신들을 도울 것을 협박한다. 이들은 인공지능은 결코 인간을 대신할 수 없으며, 고도로 발달한 기계는 곧 세상을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 하지만 에블린은 끝내 가상의 윌을 온라인에 접속시키는 것에 성공하고, 그녀는 곧 윌과 그녀 둘만의 안식처를 조성하기 위해 브라이트우드(Brightwood)라는 이름의 교외 지역으로 피신한다.




윌과 에블린은 브라이트우드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연구 시설을 확장해 나가고, 진화를 거듭한 윌은 새롭게 얻게 된 나노 기술의 힘으로 사람들을 치료한다. 늙어서 걷지 못하게 된 사람, 평생 눈이 멀었던 사람, 폭행을 당해 거의 죽을 뻔 한 사람…. 윌에게 구원을 받은 이들은 엄청난 힘을 얻게 되고, 윌은 심지어 이들의 몸을 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본디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기술의 힘으로 탄생한 신()인류에 대한 기존 과학자들과 RIFT의 우려는 한층 커지고, 이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한다. 대부분의 관객은 윌의 새로운 모습에 영화 속 평범한 인간들처럼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랜센던스가 된 그는 정말 윌이었을까? 에블린 역시 처음에는 윌을 믿고 따르지만, 그의 끊임없는 영역 확장에는 거부감을 보인다.




영화는 트랜센던스가 되어버린 윌을 내내 악(惡)로 묘사하는 듯하다가도, 결국 그가 어떤 인간도 희생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끝 부분에 제시한다. 영화를 본 관객 중 일부는 바로 이러한 혼란에 불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감독이 의도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혼란에 있지는 않을까 짐작해본다.


윌이 자신의 영역을 전 세계로 넓히고자 한 것은 결코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오염된 세계를 정화하고자 했던 에블린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윌은 이를 바이러스에 노출된 에블린과 기꺼이 접촉함으로써 증명한다. 그는 자신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인간을 그리고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존재였음을, 파멸을 통해서 밖에 보여줄 수 없었다.

 


이러한 결말은 물론 특정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기술의 발전을 옹호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을 가지고 경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편의 영화가 반드시 어떠한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야 할까? 난 아니라고 본다. 트랜센던스는 우리에게 질문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였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윌을 기계라 치부하고 그를 제거하려 힘썼을까, 아니면 그의 능력을 이용해 세상을 치유하려고 했을까? 답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어쩌면 트랜센던스의 위험성에 두려움을 느끼며 이를 막으려던 사람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 그러한 폭력성과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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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태치먼트', 우리는 모두 외롭고 혼란스럽다

'디태치먼트',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포옹일지도 모른다


스포일 주의


'디태치먼트 Detachment'는 한글로 풀면 '거리 두기, 무관심' 정도가 된다. 문제아들이 수두룩한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발령을 받은 헨리(애드리언 브로디 역)의 태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다. 그렇다고 그가 학생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다른 보통의 교사들보다 능숙하게 문제아들을 대한다. 수업 시작부터 시비를 거는 학생에게는 '수업을 듣기 싫으면 나가도 좋'며 교실 밖으로 내보내고, 특정한 이유 없이 그에게 화를 내며 욕을 퍼붓는 학생에게는 '나는 단지 너에게 기회를 주려는 것뿐'이라며 진정시킨다. (여담이지만, 애드리언 브로디만큼 이 영화에 부합하는 완벽한 얼굴을 가진 배우가 있을까? 그는 1시간 30분 남짓의 영화 동안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로서가 아니라 '교사' 헨리 바스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헨리는 학생 개개인을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교육 철학에 따라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로 아이들을 지도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학생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결여되어 있거나 혹은 부족한데, 이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것에도 모자라, 알코올 중독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린 어머니를 마주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는 타인에게 지나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자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슬픔과 아픔만으로도 충분히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학교를 벗어나 혼자 남겨졌을 때 찾아오는 슬픔과 분노에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리고 유일한 가족인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있는 요양 병원의 간호사에게 애꿎게 화를 퍼붓는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그는 눈물을 흘린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고 있지만 사실 그 자신도 치유가 필요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버스 안에서 매춘하다 폭행을 당하는 10대 소녀 에리카(사미 게일 역)를 마주치게 되지만 자신의 슬픔에 매몰되어 그녀를 지나친다. 그리고 그런 그를 따라 버스에서 내린 그녀에게 잔인한 말을 퍼붓는다. 철저한 'Detachment 거리 두기'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길에서 재회하게 된다. 에리카와 몇 마디를 주고받던 헨리는 그녀를 집으로 초대해 먹을 것을 주고, 강간을 당해 상한 그녀의 몸을 치료해주는 등의 호의를 베푼다. 그의 호의를 처음에는 자신의 몸을 탐하는 것으로 오해했던 에리카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의 도움에 차차 마음을 열게 되고, 정상적인 10대 소녀의 삶을 되찾는다. 헨리를 위해 아침과 저녁을 준비하고, 함께 쇼핑하며 그에 대한 애정도 키워간다. 물론 헨리는 그런 에리카에게 '나를 위해 변할 필요 없다. 우리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고 못을 박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한 기존의 영화들이 문제가 있는 학생들과 이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영웅적인 교사를 다루었다면, 영화 '디태치먼트'는 학생이건 교사건 모두 하나의 '외롭고 혼란스러운' 인간으로 묘사한다. 여기에 더하여 이들은 자신의 아픔에만 침잠되어 타인에게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훨씬 현실적인 접근인 셈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 들어 팽배해진 '쿨Cool한 것'에 대한 신봉이나 '내 인생이니 너는 상관하지 말라'는 배타적인 태도는 우리를 더욱 외롭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외로움과 혼란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 걸까, 아니 해결될 수 있기는 한 걸까?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 감독은 우리에게 두 가지 케이스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신의 가치에 대해 부정을 당하는 왕따 소녀 메레디스(베티 케이 역)의 경우다.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헨리에게 사랑을 느끼고 마지막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가지만, 헨리는 메레디스에게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다. 절망한 메레디스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는 길을 택하고, 헨리는 이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과거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된다. 그 어떤 문제도 만들지 않고 한 달이라는 기간만을 채우려 했던 그의 안일한 마음가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메레디스의 죽음은 그를 혼란으로 밀어 넣는다.


 





그럼에도 영화가 절망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두 번째 경우로 제시된 에리카와 헨리의 관계는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제와 상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보듬으며 살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헨리는 자신의 아픔을 에리카에게 이야기하면서, 에리카는 헨리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서로를 치유해 간다. 헨리는 지금까지 그가 고수해왔던 삶의 방식대로 "I am not good for you(난 네게 좋지 않아)"라며 에리카를 밀어내지만, 영화 마지막 즈음에 다시 그녀를 찾으며 관계의 희망적인 회복을 예고한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포옹일지도 모른다.


'디태치먼트 Detachment'는 디태치먼트, 즉 거리 두기만으로 치유할 수 없는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때로는 학생, 때로는 교사의 입장에서, 그리하여 결국 인간의 본연적인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끝내 사랑스러운 것은 주인공 헨리가 에리카를 다시 찾음으로써 타인에 대한 '구역질 나는 냉정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애정과 관심으로 치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처럼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었으면 한다.




영화 중간에 삽입된 OST로 평소에도 아주 좋아하던 Ray LaMontagne의 Empty가 나와서 반가웠다. 






Posted by 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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