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 텀 12, 상처받은 이들이 회복되는 곳



사실 처음 몇 분간은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너무 잔잔한 색감에다 시시콜콜한 대화로 이루어진 첫 장면에 대한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확신했다. '숏 텀 12'라는, 뭔가 알 수 없는 이름의 이 영화를 앞으로 꽤 오랫동안 기억하고 지인들에게 추천해 줄 거라는 걸. (이하 스포일러 주의)



여주인공 그레이스(브리 라슨 역)는 숏 텀 12라는 청소년 위탁 관리 시설에서 일하는 선생님. 그녀는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정신적인 질환 등 피치 못할 이유로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없는 청소년들을 보살펴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끌었던 첫 번째 아이는 '마커스(키스 스탠필드 역)'.


곧 18살을 맞이하는 소년인 그에게는 마약 중독에 시달리는 엄마 밑에서 보낸 불우한 어린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하게 남아있다. 영화 속에서 그가 엄마로 대표되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담아 쓴 랩을 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유튜브에 그 부분만 따로 편집한 영상이 있을 정도. (아래 영상 참조)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가 유일하게 애착을 보이는 대상은 자신이 키우는 어항 속 물고기 한 마리. 곧 성인이 되어 숏 텀 12를 떠나야 하는 그에게는 유일한 친구였던 셈.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물고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게 되고, 마커스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의지를 놓아버리고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린다.






 


다음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캐릭터는 '제이든(케이틀린 디버 역)'.


엄마의 죽음 이후 아빠와 단둘이 살며 학대를 당해온 소녀다. 어린 시절, 제이든과 비슷하게 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비롯한 갖은 학대를 당했던 그레이스는 제이든을 보며 차라리 잊고 지내고 싶을 정도로 불행했던 자신의 과거와 직면한다. (개인적으로 숏 텀 12에 머무는 아이들의 내적 갈등뿐 아니라, 이들의 보호자이자 선생님인 그레이스의 내면적 갈등과 성장 역시 담아냈다는 것 꽤 마음에 들었다)


제이든 역시 마커스와 마찬가지로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했지만, 숏 텀 12에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환대 속에서 조금씩 나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레이스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속에서 그녀에게 차츰 마음을 열게 되고, 자신이 쓴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어와 상어가 등장하는, 얼핏 보면 동화와도 같은 이 이야기는 섬뜩하기 그지없다. 마커스가 랩의 가사로 그의 아픔을 표현했다면, 제이든은 동화에 자신의 상처를 담아낸 셈. (아래 영상 참조)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건, 무수한 상처를 가진 그레이스를 향한 메이슨(존 갤러거 주니어 역)의 무한한 믿음과 사랑이었다. 그녀는 혼자서도 강했지만, 그가 곁에 늘 있어줌으로써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어쩌면 부러웠던 것도 같다. 서로를 이해하고 기다리며 나아지는 그 모든 과정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장 약한 모습까지 내비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 전 다녀온 소설가 박범신의 강연에서 그가 그랬다. 사랑은 '있는 것'이 아닌 '없는 것'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돈이 있어서'나 '키가 커서' 사랑할 것이 아니라, '돈이 없지만' '키가 작지만'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는 거다.


숏 텀 12에서 메이슨이 그레이스에게 보여준 사랑은 바로 그랬다. 그는 그녀의 불안한 영혼과 상처까지도 감싸주고 싶어 했고, 그것을 거부하는 그녀를 끝까지 기다려주고 용서해주었다. 맞아- 사랑이 저 정도는 되어야지, 싶었다.


꼭 내가 받고 싶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랑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까지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거.


여하튼, 지금까지 나열한 이 모든 사랑스러운 지점들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영화를 보고나면 당신의 마음도 따뜻해지리라. (혹은 외로워지거나!)


이런 좋은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P.S) 땡스 투 왓챠!




Posted by 호양



블라인드

Blind 
9.2
감독
타마르 반 덴 도프
출연
할리나 레인, 요런 셀데슬라흐츠, 카텔리네 버벡, 얀 데클레르, 안네미케 바커르
정보
로맨스/멜로, 판타지 | 네덜란드, 벨기에, 불가리아 | 98 분 | -
글쓴이 평점  





늦은 밤 보는 잔잔한 영화 한 편.

한동안 버려두고 지내던 취미를 다시 찾았다.


왓챠라는 앱이 굉장히 좋다는 걸 최근에야 느끼고 있는데,

이유는 바로 내 취향에 맞는 영화를 알아서 추천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게된 영화 블라인드 Blind (2007)는

늦은 밤, 내일 할 일은 내일로 제쳐두고 보기 좋은 영화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우울한 사운드, 칙칙한 색감, 어두운 사람들.

겨울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음침하기 짝이 없다.


눈이 보이지 않아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소년 루벤과

그에게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읽어주는 마리.

이들의 사랑은 동화 속 카이와 게르다의 사랑처럼 피어난다.





하지만 마리는 루벤이 수술을 통해 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면

어린 시절 입은 상처로 얼굴이 흉터로 뒤덮인 자신을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의 사랑조차 떠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편지 한 장만을 남긴채 떠난다.



*

내 사랑 루벤.

이 편지를 읽을 쯤이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보고 있겠지.

허나 가장 아름다운 건 네 손끝으로 본 세상일거야.

내 사랑, 나를 기억해줘. 네 손끝, 네 귓가에 남은 나를.

너로 인해 난 놀라운 사랑을 봤어. 가장 순수한 사랑.

진실한 사랑은 보이지 않아. 영원함도 그렇고.

마리.

*



이에, 루벤은 마리가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다시 실명을 결심한다.





영상미도 그렇고, 영화 속 안데르센의 동화도 그렇고, 오랜만에 들은 더치어 특유의 억양도 그렇고.


모든 요소들이 마음에 들었던, 동화 같은 그러나 동화보다 아름다운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영화화 한 감독의 마음이, 그리고 이들의 사랑이 눈물겹게 사랑스럽다.



Posted by 호양




우아한 거짓말 (2014)

Elegant Lies 
8.1
감독
이한
출연
김희애,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 유아인
정보
드라마 | 한국 | 117 분 | 2014-03-13
글쓴이 평점  


'우아한 거짓말'이 하는 우아한 거짓말



분명 신선한 소재의 색다른 접근인 것은 맞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김희애,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 유아인, 성동일까지 다양한 연기파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슬픈 영화를 억지로 슬프게 만들지 않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중간 중간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내는 요소들을 넣은 건 그저 혼란스럽다. 그러고보니 <우아한 거짓말>은 우아한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의미심장한 제목으로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실상 영화는 제목만 못하니.


개인적으로 동일 감독이 연출한 <완득이>는 보지 못했지만, 거의 똑같은 방법으로 제작된 <우아한 거짓말>만 보고 판단하건데, 굳이 시간을 내어 보고 싶지는 않은 영화다. 


김려령 작가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된 <우아한 거짓말>의 소재는 '학교 폭력.' 그중에서도 '따돌림'에 바탕을 둔 '심리적 폭력'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 폭력은 천지(김향기 역)의 자살로 이어지고, 엄마 현숙(김희애 역)과 언니 만지(고아성 역)는 천지의 극단적인 선택의 연유를 추적한다. 천지를 둘러싼 많은 이들의 각자 다른 시선을 최대한 담으려고 했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산만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옆집 총각 추상박(유아인 역)의 개연성이 그렇고, 천지를 괴롭히는 주축 역할을 맡은 화연(김유정 역)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억지성이 그러하며, 현숙을 따라다니는 만호(성동일 역)의 파렴치함이 그러하다.


천지가 죽음을 결심함과 동시에 전달하고 싶었던 5개의 빨간 실뭉치 속 메세지들은 분명 모두 달랐다. 그리고 그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이를 온전한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Posted by 호양



노아 (2014)

Noah 
5.5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
러셀 크로우, 제니퍼 코넬리, 엠마 왓슨, 안소니 홉킨스, 로건 레먼
정보
드라마 | 미국 | 139 분 | 2014-03-20
글쓴이 평점  


영화 '노아', 성경 속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재조명하다


성경을 외우다시피 하는 기독교 신자가 신앙적인 제고를 위해 영화를 볼 심산이라면 그러지 않는게 좋겠다. 영화 <노아 Noah>는 작품성, 흥미도 등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성경에 기반했으나 성경의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성경 속 노아의 모습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던 나 역시도 영화를 보고 몇몇 부분들이 헷갈렸다. '이런 인물들이나 상황들이 정말 성경에 나왔었나?' 하고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세히 서술해 놓은 기사가 있어 링크를 보탠다. 

(http://news.donga.com/Main/3/all/20140324/61943525/1)


위 기사가 성경에 대한 영화의 재해석이 타당한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답을 해 주고 있다고 보고, 이제 다른 문제들에 대해 들여다 보자.


우선, 영화의 시작은 물론 중간중간 삽입되는 상징적 씬Scene들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사악한 동물로 묘사되는 뱀, 심장처럼 두근거리는 열매, 그리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 열매를 따먹는 인간, 그리고 형제를 살해하는 카인.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추방 당한 이후에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거나 깨닫지 못하고 끝내 타락한다. 이에 신이 노하여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고하고, 이러한 멸망의 대서사 중심에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였던 노아(러셀 크로우 역)를 세운다.


타락한 세상 속 모든 죄없는 것들을 구할 방주를 지으며, 영화 속 노아는 갈등한다. 신이 계시한 새로운 세상에 '인간'을 존속시킬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그리고 그는 '인간'이 사라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그의 결정에 노아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은 반대한다. 자신들은 신의 은혜를 입은 것이니 살아남아도 된다는 것. 하지만 노아는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목격하고, 그와 그의 가족들 역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던 중에 노아의 첫째 아들 셈의 부인 일라는 임신을 하게 되고, 잉태한 생명의 존속 여부를 두고 노아와 가족들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노아는 새로운 생명이 아들이라면 자신의 막내 아들 야벳을 뒤이어 마지막 인간이 될 것이고, 딸이라면 태어나는 즉시 죽일 것이라는 결정을 전한다.


평생 노아를 따랐던 노아의 아내와 자식들은 이에 모두 반발하고, 이후 태어난 두 명의 여아들은 이러한 갈등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 이상으로 작용한다. 바로 노아의 결정을 완전히 무산시킨 것. 인간에 대한 '불신'은 온데간데 없고 손녀에 대한 '사랑'으로만 가득찬 노아는 차가운 칼날 대신 따뜻한 입술을 선택한다. 이후 노아는 본인의 이러한 선택이 자신에 대한 창조주의 믿음을 저버렸다는 자괴감에 빠져 하루하루를 술에 의존해 살게 된다.


그러나 <노아>의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노아를 '나약한 인간'이자 '창조주를 실망시킨 실패자'로 두지 않는다. 대신, 성경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일라(엠마 왓슨 역)를 통해 노아에게 '인간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손녀를 죽이지 못한 노아의 '사랑'이야말로 타락한 인간을 구할 수 있는 실마리라고 역설하는 것. 



여기서 동일한 감독의 영화 <블랙 스완 Black Swan>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찾을 수 있다. 우선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평행선 상에 놓여있다.


그런데 <노아>의 희망적인 메세지와는 다르게, <블랙 스완>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니나(나탈리 포트만 역)의 절제된 상태를 깨부수고, 결국은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결말을 제시한다.


"나는 완벽했어요...I was perfect"라는 니나의 마지막 대사는 노아의 마지막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흑조가 되어버린 니나의 마지막 눈물이 허탈함을 자아낸다면, 노아가 내민 힘없는 손을 잡은 나메(제니퍼 코넬리 역)와 이후 이어지는 이들의 눈물 겨운 포옹은 잔잔한 따뜻함을 전해준.


개인적으로는 두 영화가 전하는 서로 다른 메세지가 나약한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한 감독의 견해가 변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주: 이상의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 그저 참고만 하길 바란다.


Posted by 호양




노예 12년 (2014)

12 Years a Slave 
8.1
감독
스티브 맥퀸
출연
치에텔 에지오포, 마이클 패스벤더, 베네딕트 컴버배치, 브래드 피트, 루피타 니용고
정보
드라마 | 미국 | 134 분 | 201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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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이 들려주는 '노예'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


영화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는 주인공 솔로몬 노섭이 쓴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이 쓰여진 것이 1853년이니, 15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전해지는 감동은 전혀 낡지 않았다.


<노예 12년>은 영화 <헝거 Hunger<셰임 Shame>으로 이름을 알린 감독 스티브 맥퀸의 세번째 작품으로, 자유인이었던 솔로먼 노섭이 미국 남쪽으로 납치되어 12년간 노예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노예제도가 금지되었음에도, 북부의 흑인들을 납치하여 남부로 인신매매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고 한다. 그 희생양이 된 것이 솔로먼 노섭이었던 셈. 그는 하루 아침에 자유인 '솔로몬'에서 노예 '플랫'으로 전락한다.


노예. 사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유인인 우리는 '노예'라는 신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드물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보다는 영화가 묘사하는 개별 인물들 - 흑인 노예들은 물론, 다양한 백인들까지 - 의 모습이 더욱 흥미로웠다.


'노예 제도'라는 부당한 장치 아래 인간은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똑같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는가.




영화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섬뜩하게 했던 건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농장일을 하게 된 사람들의 모습이었는데, 이들은 똑같은 일을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너희 흑인 노예들과는 다르다'라는 태도를 보인다. (브래드 피트 제외) 솔로몬 노섭이나 팻시의 지극히 '인간적인' 부탁도 끝내 외면한다. 이때, 나는 이런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과연 누가 더 '노예스러운'가.


요즘 같은 시대에 '인간'을 '노예'로 만들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종종 인간은 자발적으로 무언가의 '노예'가 된다. '돈'이나 '성', '명예' 따위 말이다.


<노예 12년>은 '노예'를 넘어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에서 솔로먼 노섭은 12년간의 노예 생활을 했지만 끝내 '인간다운 인간'이었다. 
그는 팻시의 부탁을 거절함으로써 살인이란 부덕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수없는 시련 끝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자유인이 된 이후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할 이유는 다분하다.


실제로 영화는 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6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8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여우조연상, 각색상 등 최종 3관왕을 차지했으며,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인간'에 대한 영화를 감히 수상 내역만으로 판단하겠냐만은, 대내외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인 것만은 충분히 증명된 셈이다.


Posted by 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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