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냄새]



봄이 온다. 오늘은 비가 온다길래 오랜만에 우산을 챙겨들었는데 다행히 딱 좋을만큼 비가 왔다. 그래서 봄이 오는 냄새가 딱 좋을만큼 거리마다 퍼졌다. 내게 봄 냄새는 여린 초록색. 아지랑이가 피어나기 전, 새싹이 채 돋아나기 전, 세상이 녹음으로 물들기 전, 딱 그만큼의 초록색이다. 막 신나지도 아주 우울하지도 않은 딱 그만큼. 마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처럼. 그래서 사계절 중 봄이 제일 좋다.


봄이면 앞다투어 꽃이 핀다. 나는 화려한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화려할수록 그 끝도 추한 법. 당연한 것은 없다. 오래지 않은 일상들이 내게 말해 준 몇 안되는 진실. 그래서 벚꽃이 좋다. 보일듯말듯 연약한 시작이 어느덧 만개하여 이내 잎을 떨구고 만다. 떨어지는 벚꽃 잎은 눈물같다. 아쉽고도 아름다운. 봄이 오는 냄새가 반가운 건 아마 곧 벚꽃이 피기 때문일테고, 봄이 오는 냄새가 안타까운 건 아마 곧 벚꽃이 지기 때문일테다. 얼마 되지 않을 시간 동안 아름답기 위해 추운 겨울을 참고 견딘 벚꽃이 그럼에도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봄은 서툰 아이같다. 죽을만큼 춥거나 덥기만 한 여름이나 겨울에 비해 따뜻했다가 이내 춥고 또 따뜻하다. 그 서툰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마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같아서. 설렘과 함께 춘곤증을, 햇살과 함께 꽃샘추위를 몰고 오는 것도 그렇다. 봄에는 그래서 불완전함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런 변덕에도 봄이 아름다운 건 그래도 내일은 설레고 또 따뜻할 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 겨울과 느린 봄을 탓할 새도 없이 어느덧 계절은 지나갈 것이다. 봄이 왔구나, 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름이 올 것이고, 이내 가을, 그리고 겨울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매번 봄이 기다려지는 것은 새로운 계절을 맞아 싹을 틔우는 나무들처럼, 새로운 계절을 지나는 사람들 역시 마음의 폭이 한 뼘 자라기 때문이다.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새싹은 금세 알아보지 못할만큼 큰 나무가 되어 있을게다.


봄이 오는 냄새가 유난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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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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